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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아빠 펭귄과 엄지 손가락

남미란/동화 작가 작품 '가시나무 이야기'

작년인가. 한국에서 '남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남극에 사는 포유동물들의 생생한 생존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라 하여 본 기억이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감동을 준건 펭귄들의 생존 번식에 관한 기록들이었다. 번식기가 되면 부부가 된 펭귄들은 남극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대이동을 하여 알을 낳는다. 암컷이 수컷의 보호 속에서 알을 낳으면 수컷 펭귄은 알을 건네 받아 품기 시작한다. 엄마 펭귄이 번식지로부터 먼 바다로 가서 충분한 먹이를 먹고 돌아와야만 곧 깨어날 아기 펭귄에게 영양공급을 해 줄 충분한 젖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암컷이 떠나고 수컷펭귄은 암컷이 돌아오기까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발등위에 올려 놓고 다리를 한껏 구부리고 모아서 자신의 털로 알을 품고 체온을 유지해주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서서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몸을 아주 조심스럽게 돌릴 뿐 남극이 주는 혹독한 역경을 견뎌낸다. 정성을 다해 부모로서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암컷들이 먹이를 찾아 바다를 오가는 과정에서 물개들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잡혀 먹히는 일이 발생하면 남편 펭귄은 돌아오지 않는 아내 펭귄으로 인해 추위와 허기에 지쳐 결국 죽음을 맞는 경우가 있음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렷는지 모른다. 암컷이 돌아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텐데. 아빠 펭귄은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발등에서 자신의 품에서 알을 내어 놓는 법이 없다.

그랬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펭귄에게도 있었다. 아니 너무 열렬하고 뜨거워서 자신을 그 냉혹한 남극의 빙산들 속에서 산화시켜버리는 것이다. 눈물겨운 펭귄의 아버지 사랑이다.

아버지. 내게 있어 아버지란 단어는 아픈 엄지 손가락이다. 어린 시절 나는 나의 엄지 손가락이 싫었다. 마치 한국 단편 소설 중 하나인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처럼 나의 엄지 손가락은 뭉툭하고 짧은 아버지의 엄지 손가락과 꼭 닮았다. 그래서 어린시절 내 엄지 손가락은 내게 큰 콤플렉스였다.

엄지손가락처럼 내 아버지도 내게 콤플렉스였다. 젊은 시절부터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술을 드시고 늦은밤 집에 오시면 언제나 내 이름을 수십번도 넘게 부르며 자고있는 아니 자는 척 하고 있는 나를 깨우며 '아이구 내 새끼 미란아~ 일어나봐라~' 술 냄새 풍기며 내게 얼굴을 비비며 나를 토닥이는 술취한 아버지를 나는 싫어했다.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아버지를 나는 싫어했다. 돈을 많이 버실 때는 가정을 등한시하고 돈을 허투루 탕진하는 아버지를 나는 싫어했다. 재산을 탕진했을 때 친척 모두에게 '내 저럴 줄 알았지'라며 무시당하는 아버지를 나는 싫어했다. 이후 자꾸만 무기력해져가는 아버지를 나는 싫어했다. 내 엄지 손가락 만큼 꼭 그만큼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엄지 손가락을 지독히 싫어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언제나 나의 최고의 지지자였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우리 미란이가 야무지지' '우리 미란이가 똑똑하지' '우리 미란이는 뭐든지 잘하지' '우리 미란이는 예쁘지' '우리 미란이는 춤도 잘 추지' '우리 미란이는 노래도 잘하지'라며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자식이라는 이기의 옷을 입은 채 아버지의 사랑은 보지 못하고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만 보며 오랫동안 아버지를 싫어했다.

이후 어른이 되고 철들 들면서 나는 비로서 '아버지 사랑' 그 본질을 조금씩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더이상 나는 내 엄지 손가락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고 아버지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비로서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헤아리게 된 것이다.

미국에 이민와 살면서 아버지가 보고플 때면 나는 가끔 내 엄지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 엄지 손가락 안에 아버지가 있고 내가 있다. 아버지가 내게 준 사랑. 펭귄이 자신의 알을 품고 있는 사랑과 같다는 것을 내 엄지 손가락이 내게 말해 준다.

얼마 전 내가 미국으로 온 이후 사진 말고는 뵙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을 컴퓨터 화상을 통해 마주했다. '도대체 언제 올거니' 라며 울먹이시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 딸을 화상으로나마 마주하는 반가움에 주름진 눈에 눈물을 가득 담으신 채 모니터 속에 계셨다. 더 깊어진 눈가의 주름과 세월의 흔적들이 아버지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에 통곡하고 싶어졌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모니터로 딸을 바라보고 계실 아버지께 억지로 과장스러울 만큼 아무렇지 않은 척 활짝 웃어 보였다.

"반가우면 웃어야지 울긴 왜 우세요. 난 아버지 얼굴 보니까 좋기만 한데. 내년엔 꼭 아버지 보러 갈게요. 약속해요."

화상 전화를 끊고 눈이 퉁퉁 붓도록 나는 한참을 하염없이 울었었다. 그렇게도 싫었던 내 엄지 손가락이 이젠 그리움으로 나를 아리게 한다. 너무 늙어버리신 아버지 요사이는 자주 기억이 가물 가물해져서 모든 게 희미해진다고 걱정하시는 아버지 이제 사십 중반을 훌쩍 넘어 선 딸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아버지. 어쩌면 오늘도 아버지는 내년에는 꼭 오겠다 한 보고픈 딸을 기다리며 남극의 벌판위에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알을 품고 서 계신지도 모른다. 온 몸을 던져 자식을 품어내는 아빠펭귄처럼 꼭 그렇게 말이다. 아마도 늘 그랬듯 그리움이라는 강한 추위과 바람도 또 견디시겠지.

오늘은 내 엄지 손가락이 통풍이 든 것처럼 아린다. 아린 엄지 손가락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려는 하루다. 아버지와 나는 뭉툭한 엄지 손가락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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