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 플레이스] 박근혜의 '허스토리'
박용필·논설고문
여성의 복수형을 '위민(womyn)'으로 표기하는 것만 봐도 이 축제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성에 종속되기 싫다며 위민(women)에서 'men'을 빼고 대신 어느 쪽과도 관련이 없는 'myn'을 넣어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 뿐이 아니다. 축제 참석자들을 일컬어 여왕(queen)이라고 불렀다. 고대 영어에선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여자들을 '퀸'이라 불렀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여자들이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는 미시간 축제에 뭇여성들의 시선이 쏠리게 된 건 당연했다. 멀리 일본 호주 유럽 등에서도 참가자가 몰려들어 축제는 여권신장의 한마당 잔치로 치러졌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남성 위주의 '히스토리'가 아닌 그녀들 만의 역사 곧 '허스토리(herstory)'를 펼치자며 다짐 또 다짐했다. 1주일 동안 텐트에서 자고 먹고 즐기며 열띤 토론을 벌여 여성파워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지난 90년대 중반 랜덤하우스가 출판하는 웹스터사전이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미시간 축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위민'과 '허스토리'를 정식 단어로 수록한 것이다. 미국 영어의 표준으로 평가받는 사전이어서 이 같은 결정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히스토리는 앞에 히스(his)가 붙어서 그렇지 사실 남성과는 무관한 단어다. 옛 그리스인들이 특정 사건이나 이야기를 흥미있게 정리해 놓은 걸 '히스토리아'라고 불렀는데 이게 영어에서 '히스토리'로 굳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웹스터 측은 여성계의 의견을 수용해 '허스토리'를 별도의 단어로 취급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위민' 대통령이 탄생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 대통령은 세계적인 추세여서 별로 놀랄 사건도 아니다. 스위스는 여성 정치인들이 내리 대통령으로 뽑혀 권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위기 땐 여성 특유의 감성정치와 모성애 리더십이 처방이어서 여성이 최고 통치자가 되는 나라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한국은 주변국가들에 비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한데도 먼저 여성 대통령이 나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신라의 선덕.진덕.진성여왕 이래 천년이 넘어 탄생한 첫 '퀸'이라고 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앞으로 5년 박근혜 당선인이 어떤 '허스토리'를 써내려갈지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한 이곳 한인들도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도 차기 유력 대선주자는 힐러리 클린턴이다. 예상대로 힐러리가 집권에 성공할 경우 2017년 첫 임기를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5년 중 마지막 5년차에 해당되는 해다. 한.미정상회담 테이블에 두 여성이 나란히 손 잡고 나타나는 장면은 상상만해도 흐뭇하다. 박근혜와 힐러리의 '허스토리'가 성사될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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