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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다시 탯줄을 자르며

언젠가 이런 때가 오리라 생각했다. 아프지만 너희를 떠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오리란 걸. 내가 잡고 있던 동아줄을 내려놓아야 너희 삶이 훨씬 편해지고 자유로워진다는 걸.

하지만 쉽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간에 얽힌 그 모진 인연의 탯줄을 내 손으로 자르는 것은 내 살점을 뜯어내는 것보다 더 아프다. 하지만 이젠 안다. 의젓한 어른이 된 너희를 내 품에서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을.

부모는 두 번 탯줄을 자른다. 첫 번째 자른 탯줄은 아프지 않았다. 내 손으로 자른 것이 아니라서, 너희를 만난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었기에.

두 번째 탯줄은 부모가 스스로 자른다. 내 이웃 미국 친구들이 애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잘하는 그 탯줄 자르기를 난 여태 하지 못했다.

한국식 사고방식, 시대에 뒤떨어진 충고와 간섭이라 구박해도 어쩔 수 없었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아 온전하게 바로 설 수 있는 그 날까지 미련하게도 난 멈출 수 없었다.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잘 자라줘서 고맙다. 이제 학업을 잘 마치고 원하던 직장에서 꿈을 펼치며 살게 돼서 정말 다행이구나.

섬나라 사람처럼 다른 문화와 풍속에 부대끼는 부모 곁에서 잘 견뎌준 자식들아. 차별과 편견을 딛고 든든하게 자란 내 자식들아. 험난한 이민생활에 지팡이가 돼준 고마운 아이들아. 이젠 못난 부모 땜에 기죽지 말거라. 당당하게 앞을 보고 세계를 네 가슴에 품거라.

그 동안 정말 행복했다. '엄마'라고 너희가 붙여준 내 이름은 어둔 밤 절망 속에서도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 이름 붙잡고 자나깨나 너희들 돌보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전번에 수술 받았을 땐 죽을 병이 아닌데도 너희들 두고 먼저 갈까 봐 두려움에 가슴을 졸였단다. 마취주사가 온 몸에 퍼지기 전까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아서 조금만 더 너희를 돌보다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만큼 컸으면 이젠 됐다. 이제 너희를 놓아주련다. 미처 자르지 못한 그 탯줄을 지금 자르련다. 너희를 내 삶에서 떠나 보내는 것만이 너희가 자유롭게 내 품으로 돌아오는 길이란 걸 깨달았다.

억척같이 먹이고 입히고 품고 있던 내 팔을 거두어 드리련다. 놀라거나 섭섭해 말거라. 엄마는 영원한 너희들의 동반자란다. 딸아, 약한 네 심성이 상할까 봐 고등학교 졸업식날 써두고 못 준 글을 지금 네게 주련다.

'이제 나는 너를 떠나 보낸다. 혼자 길을 가더라도 홀로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 쓸쓸하면 네 배꼽을 만져보아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한 몸이었다는 것을. 너는 내 속에서 솟아난 축복이었다는 것을. 내가 작은 배꼽의 흉터로 네 몸에 남았듯이, 내 가슴에 심어준 네 사랑의 흔적을 만지면서 너를 세상 속으로 밀어 보낸다. 훨훨 날아가거라. 하늘 끝까지. 네 꿈과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날아가거라.' -이기희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 서문 중에서-

사랑한다. 딸아 아들아. 너희를 놓아주련다. 부질없는 간섭과 끝없는 욕심에서 너희를 놓아주련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나를 놓아줄 시간이다. '엄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내 머리에 얹힌 가시면류관을 내려 놓을 생각이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꾼 꿈이라서 그 색깔조차 흐릿해졌지만 안개 같은 그 꿈 속을 거닐 생각이다. 집시처럼 자유롭게 내 남은 시간을 채울 작정을 한다.

잘 가라 내 자식들아. 세상 속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아픔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내일로 비상하거라. 사랑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이기희 윈드화랑 대표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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