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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산골에 눈이 오니 미국 대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지난 주말 많은 눈이 내렸다. 내가 사는 충남 공주는 강원도 같은 깊은 산간 지역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야 지대라고 할 수도 없다. 대충 말하면 깊은 산골도 너른 벌판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을 때면 산골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김장을 마치고 아이 엄마가 이사를 막 끝낸 뒤 마침 큰 눈이 내려 요즘 산속으로 휴가를 온 기분이다. 원래는 겨울에도 비닐 하우스를 짓고 부업을 해서 생활비를 좀 보탤 심산이었다. 하지만 비닐 하우스 마련은 한두 해 미루기로 했다. 밭이나 논을 추가로 구한 뒤에 비닐 하우스가 들어설 자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생각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완전한 농한기를 맞은 셈이다.

지금 창 밖의 풍경은 설국 그 자체이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져 있다. 연탄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빨간 김장김치를 꺼내 흰 쌀밥에 얹어 먹으며 밖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지난 해 이맘때는 중노동으로 눈코 뜰 새 없었다. 귀국의 짐을 채 풀어 놓기도 전에 마당 만들기 돌담 쌓기 등 토목공사에 매진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겨울 그다지 큰 토목 공사는 없을 것 같다. 앞 밭을 지나 마당으로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는 일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산에서 나무도 많이 해왔는데 올해는 그것도 조금만 할 생각이다. 불을 땔 황토 움막 같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땔감만 가득 쌓아 둔들 공간만 많이 차지할까 싶어서다.



시골 생활이라는 게 몸이 고달파도 마음은 대체로 유유자적이다. 농번기 때도 그럴진대 눈 속에 파묻혀 보내는 농한기는 어떠랴. 50년 남짓한 생애에 가장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주와 다음 달로 예정된 어머니의 항암 투병 중간 검진결과만 잘 나온다면 더 없이 평화로운 시간이 될 것같다.

여유가 생기니 지나간 날들이 더욱 선명하게 또 자주 떠오른다. 그 가운데서도 지난 2006~2007년 쏘다녔던 북미 땅이 무척 그립다. 며칠 전 미국의 한 포털 사이트가 미국의 아름다운 겨울풍경 10 곳을 소개했는데 두세 곳을 빼놓고는 전에 쏘다니면서 다 내가 가본 곳들이었다. 우연하게 그들 풍경을 접하게 되니 불현듯 미치게 그 곳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당시 차 속에서 자면서 돌아다닌 기간이 약 10개월이었는데 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북미 땅이 나의 성정에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사실 계절의 변화를 동반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할 때마다 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북미 땅 특히 내가 다녀온 미국과 캐나다의 오지들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곤 한다. 한국의 시골에서 그려보는 북미의 오지들은 꿈처럼 아득하다. 그래서 일까. 몽정처럼 한편으로는 짜릿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여리지만 떨림이 오래가는 가벼운 상사병 모드로 내가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점심을 막 먹고 난 지금 창 밖의 키 큰 나무에서 이따금씩 눈들이 툭툭 떨어진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눈들이 햇빛에 녹아 한 뭉텅이씩 수직낙하 하는 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시공을 초월해 북미 땅으로 달려간다. 2006년 겨울 눈 덮인 웨스트 버지니아의 깊은 산속 2007년 초 뉴멕시코의 설원 같은 해 초여름 북극해를 마주하고 있는 알래스카의 노스슬로프가 연달아 내 눈 앞에 펼쳐진다.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훨씬 좋다. 눈으로 덮인 산과 들판이 정겹고 추위로 머리가 얼얼해져 반쯤은 마취상태인 것 같은 그 느낌이 더 없이 좋다. 햇빛조차도 시린 듯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삶의 온기가 새삼스러운 겨울로 빠져들고 있다. 누가 자연의 축복을 거부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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