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6> 바람난 아내의 허무한 결말
남편은 이혼, 애인은 이별 동시 통보
남편의 제안으로 정초에 한국에 나간 아내가 돌아온 것은 봄이 다 돼 다시 장터에 나갈 준비가 한창 바쁜 3월 중순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한국에서 온 뒤로 매일같이 늦잠을 자는가 하면 저녁에는 시차를 핑계 대며 새벽 한 두시가 되도록 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루는 부인이 옆방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 서랍에서 열 장도 넘는 한 묶음의 전화 콜링카드를 발견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장씨는 옆방에서 벌써 한 시간 이상을 전화에 매달려있는 아내의 대화에 귀 기울여 들어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자세히 들을 수 없었으나 필경 어느 남자와의 통화였다. 방으로 뛰어들어가 수화기를 뺏어 들었다. 아내가 한국에서 사귄 애인이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들통 나버린 아내는 우선 겁부터 났고, 남편이 폭행을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의외로 너무 차분하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아내는 정말 겁이 나 그 길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내는 위기의 순간을 넘기기 위해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중전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짧은 영어로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던 아내는 대충 '남편이 때린다' '죽인다고 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고 있다' 등으로 얼버무렸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들이닥쳤고, 남편은 수갑을 찬 채 잡혀갔다.
폭행혐의와 학대혐의로 체포된 남편은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게 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건이 성립되려면 검찰이 고발인 즉, 아내로부터 진술서를 받아야 하는데 아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기에 검찰의 연락을 회피했다. 결국 재판은 계속 연기되다가 남편의 접근금지 명령만 유효한 채 마무리됐다.
한편 아내는 남편이 집에 없으니 자유로이 한국의 애인과 마음대로 전화할 수 있었고 누구도 방해할 사람도 없었다. 한국의 애인과는 더욱 자주 통화를 하며 가까워져 장래에 대한 은밀한 얘기까지 하게 됐다. 내친김에 남편과 이혼하고 한국의 애인 품으로 영원히 안기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남편이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아내는 겁이 덜컥 났지만 남편은 의외로 너무 차분한 말로 자신의 짐을 가지러 왔다고 말하고는 묵묵히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나가버렸다. 그제서야 남편이 멀리 떠났다고 느꼈다. 아내는 외롭고 복잡한 심경에 한국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당장 한국으로 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말을 하기 시작한 한국의 애인은 그녀의 한국행을 거부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고 한국의 애인과 함께 살 계획이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며칠 후 남편의 변호사로부터 이혼서류에 서명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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