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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15> 술 취한 대학생

강도 피해보다 무거운 취중 실수

어학연수로 이곳에 와 있는 대학생 정모씨. 퀸즈의 모식당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정씨는 어느날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됐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직장에서의 어려운 이야기며 지난 이야기들을 하며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새벽 3시쯤에서야 친구와 헤어진 정씨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 히스패닉 괴한들로부터 강도를 당하고 말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폭행을 당하고 소지하고 있던 지갑도 털렸다.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이 그냥 두들겨 맞았는데, 그 과정에서 옆에 있던 어느 집 현관문과 심하게 부딪쳤다. 충격 때문에 현관문의 큰 유리가 깨졌고, 유리 깨지는 소리에 괴한들은 도망쳤다.

다음날 정씨는 깊은 잠에서 눈을 떴으나 어디가 어딘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누구의 집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남의 집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것을 알았다. 술이 취한 데다 뭇매까지 맞아서 온몸이 아스러질 것같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룸메이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려고 집 주소를 알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친구에게 번지수를 알려주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치는 게 아닌가? 경찰이었다.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왜 체포되는지 영문을 물어볼 기력도 없었다. 알고보니 이 집은 여자 혼자 살고 있는 집이었고, 주인이 2층에서 잠을 자느라 전날 저녁에 유리가 깨진 것은 몰랐던 모양이다. 아침에 청년이 전화를 거는 소리를 듣고서야 침입자가 있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체포된 청년은 중범에 해당되는 기물파손ㆍ가택침입ㆍ절도미수ㆍ강간미수 등 여러 혐의로 입건됐다. 검찰은 다른 죄목들은 취하해주는 조건으로 중범죄인 가택침입죄 한 가지만 유죄를 인정하면 실형언도 없이 5년간의 보호관찰형을 구형하겠다고 제의해왔다. 정씨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사는 검사의 제의가 파격적이라며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종용했지만 정씨는 피해자는 자신인데 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해야 하느냐며 거부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선 변호사 모두 정씨가 술에 취해 강도 피해를 당했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남의 집에서 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인 정서상 아무리 술에 취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처음 배정됐던 국선 변호사는 정씨가 협조하지 않는다며 정씨 사건을 포기했고, 다른 국선 변호사가 다시 배정됐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끝내 정씨는 대배심 심리를 거쳐 중범죄로 기소돼 상급 법원으로 이송됐다. 이런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정씨에게 통역관인 내가 사건의 심각성을 설명해주고, 한인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고했다. 그래서 정씨는 한국의 가족에게 연락해 비용을 받아 한인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 변호사는 검찰을 끈질기게 찾아가 상황을 이해시켰다. 이 사건은 무려 1년이나 더 걸렸지만 다행히 경범죄로 감형돼 실형 없이 재판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재판으로 지쳐버린 이 청년은 어학연수고 뭐고 재판이 끝나기 무섭게 한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술로 인한 실수에 비교적 관대한 한국 같으면 별일 아닐 일이 미국에서는 심각하게 처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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