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가을과 겨울 사이…성숙의 향기를 맡다

'11월 마지막주' 성찰의 오감만족

단풍의 눈물은 아름답다.

또 일 년을 거둬가는 너의 손길은

눈부신 빛으로 나부낀다.

열정으로 짙푸르던 어제를 되돌아보며



화사한 눈물로 작별을 떨 구는 너.

차마 보이지 않는 내일로 떠나가지만

언젠가

꽃으로 꽃으로 다시 오리.

그래서 아름답다 너의 작별은.


가을은 왠지 허전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낙엽, 휑하니 불어오는 알싸한 바람, 그리고 짧은 햇살.

다시 시작한다는 기약이 있어도 언제나 끝을 바라보는 것은 왠지 마음이 시리다. 우리 눈에 닿는 단풍은 화려해도 푸른색을 잃고 숨죽여 토해내는 붉은 빛이다. 낙엽으로 떨어져 나무를 남기고 가는 그 모습이 인생사를 닮았다. 그래서 11월의 마지막은 깊은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옷깃을 여미는 늦가을. 서둘러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지만, 그래도 만끽해야할 늦가을이 아직 남아있다. 오감으로 느끼는 가을의 정취 청(廳). 시(示). 촉(觸). 미(味). 후(嗅) …. 짧은 나들이와 문화 감성으로 만나는 늦가을의 진한 향기를 느껴본다.

◆클레어몬트 단풍에 물들다

LA에서 40분 남짓 달리다 보면 발디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한 클레어몬트(Claremont)란 작은 마을을 만난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온통 단풍의 물결이다. 큰 길부터 작은 골목까지 색색의 단풍들이 마치 모빌이 살랑이듯 햇살 아래 반짝인다. 노란 은행잎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시다. 줄지어 선 색깔나무들 사이로 고풍스런 건물과 집들이 마치 영화 세트장에 온 것만 같다. 100년이 넘은 집들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히스토리 하우스(History House)'의 운치는 마을의 전설을 머금은 듯하다. 우체국, 은행, 보험회사 등 일반 업무를 보는 곳도 모두 옛스런 건물들이다. 일단 눈으로 느끼는 풍경은 늦가을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옷깃에 닿는 부드러운 바람의 촉감도 신선하다. 발 아래 그리고 손 위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감촉도 마음에 갈색으로 묻어난다. 작은 올드타운에 들어서면 적어도 몇십 년씩 역사를 이어온 레스토랑들이 가득하다. 60년이 넘은 수제 햄버거 가게, 피자가 가장 맛있다는 집, 인기 만점인 빵집 …. 정겨운 곳들을 호기심으로 기웃기웃거리며 고소한 냄새에 이내 취한다.

클레어몬트는 한나절 나들이면 늦가을의 오감을 모두 느껴볼 수 있는 감성의 마을이다. 12월 초까지도 무르익은 단풍의 빛깔을 감상할 수 있다. 곧 12월이 되면 발디산에 하얀 눈이 쌓인다. 소복히 쌓인 눈 속으로 동화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귓가를 스치는 추동(秋冬)의 선율

차창 밖을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젖어들고 싶은 가을의 선율. 블랙커피의 향과 함께 떠오르는 이브 몽땅의 '고엽'. 60년 전 노래인데도 가을이면 라디오를 타고 어김없이 돌아온다. 유태계 이탈리아 태생이면서도 프랑스 국민 배우와 가수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이브 몽땅. 그 역시 이민자였지만 1991년 사망했을 때 프랑스의 모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이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그의 영화와 대표적 샹송 '고엽'을 방송했다. 갈색 낙엽 빛깔과 같은 저음의 목소리가 너무도 매력적인 이브 몽땅의 이 곡은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차분하면서도 분위기있는 멜로디로 완성되어 이별과 사랑을 원숙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브 몽땅의 중저음과 견줄 만한 한국의 중저음 가수 '차중락'. 그의 노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1967년 젊은 연인들의 안타까운 헤어짐을 묵직한 음성을 실어 가을 노래로 담아냈다. 이 곡은 원래 번안곡으로 앨비스 프레슬리의 히트하지 못한 노래였지만 한국에선 60년대를 대표하는 가을 노래가 되었다. 한인타운에 사는 최씨(68세)는 "70년이나 무뎌져 온 가슴이지만 가을이면 아직도 이 노래에 젖어들며 학창시절을 그리워한다."고 추억한다.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도 대표적인 추억의 가을 노래다.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7080 세대의 가을 애창곡이다. 유익종이나 임지훈의 노래들도 그윽한 가을 들녘과 어울린다. 벌써 데뷔 40주년을 맞는 팝밴드 시카고의 'If you leave me now'와 호주의 대표적 그룹 에어 서플라이의 'Good bye'도 감미롭다. 이은미의 '가을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서정적인 노랫말과 소박한 감성의 선율이 마음에 닿는다.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이면 떠오르는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그의 곡 '사계' 중 '가을'과 '겨울'을 들으면 차가운 노을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자작나무의 모습이 스쳐간다. 그의 일생이 우울했던 것처럼 '비창' 역시 쓸쓸한 여운을 깊이 남긴다.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가을', '고독', '황혼'에 비교할 만큼 평생 홀로 살아간 외로움의 정서가 투영되어 있는데, '가을의 정념'이라는 곡에서 그 고독함을 느껴볼 수 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1악장 <아다지오-모데라토> , 드뷔시의 '고엽', 핀란드의 국민 음악가 시벨리우스의 '가을 저녁' 등이 11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들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피아노의 감성 미학을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루마'의 주옥같은 곡들도 한 해의 끝자락처럼 낮고 깊게 빛난다.

한해 끝자락…서정적인 선율·소박한 감성이 그립다

◆카타르시스의 충만함 - 감성 영화

늦가을엔 왠지 운명같은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가 어울린다. 그림같은 가을의 풍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애잔함의 사랑. 그럴 때 생각나는 영화 '가을의 전설(Legends of Fall)'. 미국 몬테나 평원을 흠뻑 적시는 가을의 수채화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마음의 전설로 남아있다. 특히 브래드 피트의 젊은 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음이 신선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이 가슴을 파고든다. 특히 이 영화의 OST가 압권이다. 타이타닉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제임스 오너(James Horner)의 주제 테마 '러드로우(The Ludlows)'는 피아노 선율로 시작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흘러가며 광활한 가을 풍광의 슬픈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있다.

2003년에 만들어진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 역시 '가을의 전설' 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적인 사랑을 그려 나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림같은 하얀 눈의 계곡은 가슴에 남을 만큼 명장면이다. 주 드로와 니콜 키드만의 열연만으로도 빛나는 이 영화는 르네 젤 위거가 조연으로 출연할 만큼 초호화 출연진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이념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통해 삶의 평화와 아름다움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함을 표현한다. 치열했던 현실의 삶이 허상과도 같은 사랑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순간, 인간은 짧은 사랑의 순간만으로도 가치있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콜드 마운틴을 만들었던 앤서니 밍겔라(Anthony Minghella)감독의 또다른 대작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도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영원히 잠든 사랑하는 여인을 경비행기에 태우고 사막 위를 날아가는 첫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아카데미상의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사랑을 위해 나라와 전쟁의 명분을 버린 주인공 알마시가 묻고 돌아서는 가슴 아픈 사랑이 사하라 사막에 모래바람처럼 흩날린다. 영화의 OST인 바하의 골드 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청아한 여운을 남긴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아름다운 능선, 경비행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감상하다보면 케냐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한 명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지극히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와 초원에 홀로 남겨진 여인의 강인한 모습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거대한 자연의 풍경이 인상깊은 영화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는 유명한 장면에선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은은하게 흐른다.

격렬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블랙 커피처럼 진하고 잔잔한 매력의 가을 영화는 리메이크 되었던 영화 '만추'다. 현빈과 탕웨이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큰 흥행은 이루지 못했지만, 시애틀을 배경으로한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늦가을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별 휴가를 나온 제소자 여인과 뒷골목 사내의 기약할 수 없는 우연의 사랑은 절대 고독의 깊은 느낌을 회색과 갈색의 화면으로 가득 채운다. 여백이 많고 다소 무거운 느낌으로 잔잔하게 흐르기 때문에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프랑스의 명화 '남과 여'에 흐르는 여백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감상하는 것도 신선한 방법이다.

낮이 짧아지고 일조량도 부족해지는 가을과 겨울 사이엔 '계절성 우울증'으로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다. 이럴 때 깊은 느낌의 '소리'와 '장면'들을 마주하는 것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있다. 가는 것을 붙잡을 수 없는 계절. 나무의 생명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우는 단풍의 빛깔이 청연할 만큼 아름다운 시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일까. 오감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늦가을. 또 하나의 그윽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이은선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