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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극렬한 대비 천재화가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美친 광기, 참회의 '성화'로 잠들다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만난 '카라바조'

미술계의 이단아, 불 같은 성격의 문제아, 싸움꾼, 도박꾼, 살인자.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성난 파도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처절하게 뒹굴며 강렬한 그림들을 낳았다. 성스러운 '성화'의 성역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성경 속의 아픈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인간의 모순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그가 마지막 생에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는 다윗의 손에 들린 골리앗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절대악의 표상인 골리앗의 얼굴이 아니라, 어둡고 비참하게 고뇌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리고 다윗의 칼자루에 비밀스럽게 새긴 'HASOS'. 그 암호는 'Humilitas Occidit Superbiam'. 즉 '겸손은 오만을 이긴다'는 의미를 남기며 그는 난폭함으로 얼룩진 지난 일생을 참회했다. 그리고 살인자로 쫓기던 어느 날 열병으로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어둠과 빛의 조화가 강렬한 만큼 유럽 전역에서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라고 불리는 추종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400년이 지난 지금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 되었고 시대를 앞서간 천부적 예술가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평일 아침. 미술관 개장 시간인데도 관람객이 전시관 안에 제법 들었다. 노부부의 여유있는 감상, 아이에게 열심히 그림을 설명하는 엄마, 골똘히 그림의 특징을 살펴보며 메모하는 학생들….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한 풍경들이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카라바조 초대전'이 큰 횡재인 셈이다. 자연주의 대가의 그림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흥분이 그들의 얼굴에 역력하다. 대다수의 관람객들이 그림 하나하나에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들여다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작품들의 보관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몇백 년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흠 하나없이 걸려있었다. 극도의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인물의 얼굴이나 옷 주름 한 올 한 올이 살아있다. 그리고 전체적 분위기는 매우 어둡다. 중심인물만 무대 위의 조명처럼 빛을 가졌다. 카라바조의 첫 번째 성화인 성 프란시스에 관한 그림은 그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신앙적 열정을 담았다. 거친 붓자국의 광야에 선 세례요한, 고통의 그리스도와 면류관, 쟁반 위에 올려진 세례요한의 죽음, 제자임을 부인하는 베드로. 그가 그린 성화들은 성스러움이나 고결함은 아예 보이지않는다. 극렬하게 시대를 파고들었던 성경의 이야기들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날카로운 아픔으로 풍자했다. 로마에 살면서 성당의 성화를 그렸던 그는 왜 이토록 어두운 붓자국을 그림에 남겼을까.

1573년 이탈리아의 밀라노 부근의 한 마을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석공인 아버지는 미켈란젤로처럼 미술의 대가가 되기를 소원하며 아이에게 '미켈란젤로 메르시'란 이름을 지어준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며 비참한 시절을 보낸다.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델 몬테라는 추기경의 후원으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된다. 그의 예명은 바로 '카라바조'.

로마는 화려하고 다양한 사람들로 거리는 엄쳐났다. 수천 명의 순례자가 교황에게 축성을 받고 죄에 대한 용서를 비는 의식에 매달린다. 여관주인들은 유례없는 호황에 바가지 요금으로 화답한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사기꾼, 찢어진 옷의 거지와 비단옷의 귀족들…. 로마의 광장은 활기찬 듯 보이지만 뒷골목은 춥고 어둡다. 카라바조는 이 어둠을 응시했다. 미켈란젤로의 성스러운 성화에 등을 돌리고, 그만의 성화에 붓을 올린다.

"내가 밀라노 출신 화가 카라바조를 만났을 때, 그는 악마처럼 검은 눈썹을 가졌고 얼굴에는 주름이 있으며 눈매는 깊었다. 그는 자주 싸웠고 늘 귀가가 늦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대형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큰 커튼을 본 적이 없다. 작업실에는 다른 모델들이 있었는데 젊은이와 머리가 헝클어진 어른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는 스케치를 하지 않고 붓을 거꾸로 들고 캔버스 위에 인물들과 모든 배치를 긁어서 표시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되더니 주사위와 동전 놀이를 하는 모델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커튼을 열어젖혔다. 빛이 방안을 대각선으로 비추었다. 나는 햇빛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그는 미친듯이 그려나갔다." <어느 모델의 이야기 중> - '깊게 보는 세계 명화' (스테파노 추파/다섯수레 펴냄)

카라바조의 '빛의 그림'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어둠 속에 모델들을 두고 특정한 부분에만 빛을 비추어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기법이 탄생된 것이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도 카라바조로부터 진화된 대표적 인물이다.

사실적이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한 그의 그림들은 성당에 걸리지도 못한 채 거절 당하고, 모독죄로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그럴수록 그의 광기는 더 난폭해졌다. 칼을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주문자가 작품에 대해 쓴소리를 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칼로 그림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폭력으로 수차례 감옥에 갇히기도 하던 중 길에서 붙은 시비로 그는 급기야 살인까지 하게 된다.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탈옥한다. 4년간의 도피행각 중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폭력과 범죄로 얼룩진 그의 인생은 그의 자아마저도 분열시켜 버렸다. 흩어진 그의 자아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 고스란히 박혔다. 그는 때론 그림 속의 세례요한이고 초라한 베드로였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그는 경계선 성격장애라고도 하고 '과도한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한다. 괴팍한 그의 성품은 부조리한 사회와 종교의 뒷면을 후벼파며 캔버스 위의 비명으로 남겨졌다. 그리고 뒤늦은 참회의 진실은 한 천재화가를 연민으로 기억하게 한다.

전시관 입구 벽면에 커다랗게 그려진 카라바조의 초상화는 강렬하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난다. 대형 캔버스 위의 배경들은 밤의 빛깔을 흠뻑 머금은 듯 진한 어둠이지만 치열하게 표정짓는 그림의 주인공들은 사선으로 흐르는 빛에 머문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총 8점만이 전시되고 있지만, 그의 화풍을 그대로 닮은 다른 그림들은 비록 화가는 다르지만 하나로 흐르는 거대한 물결처럼 보였다.

황금 같은 11월의 연휴는 가까운 곳으로의 문화 여행도 좋은 휴식이 될 듯하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삶을 살았던 어느 화가의 특별한 '성화'도 추수감사절의 의미와 함께 녹여낼 수 있는 귀한 만남이다.

◆'카라바조' 초대전

▶장소: LA 카운티 미술관(LACMA) 내 Resnick Pavilion

▶주소: 5905 Wilshire Blvd LA CA 90036

▶전화: (323)857-6000

▶홈페이지: www.lacma.org
(입장료: 20달러)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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