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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카타딘을 밟다 (2)] 절경도 잠깐, 험한 산길에 숨이 턱

정동협 뉴저지 거주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카타딘의 정적을 깨우며 우리는 서둘러 산행 채비를 해야 했다. 오늘 인디언 원주민들의 모임이 있을 예정이라 조금 늦으면 차를 주차할 곳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어제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7시로 예정된 일정이 2시간 앞당겨져 새벽에 토끼가 깨 있을 무렵 우리도 그들과 함께 눈을 비비고는 장비를 갖춰 모닥불 부근으로 모였다. 아침으로 먹을 음식을 조금씩 배급 받아 배낭에 넣고는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다스리며 15인승 밴에 오른다.
모두 머리에 착용한 헤드랜턴을 켜고 5268피트(1606m)의 마운트 카타딘에 오를 준비를 마치니 오전 4시50분이다. 등산로 초입 큰 바위에는 박스터 전 주지사의 글과 메인주 박스터주립공원의 내력이 적힌 동판이 나란히 놓여 있어 1921년부터 24년까지 주지사를 지낸 미스터 박스터의 자연 사랑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어두울 때 산길을 오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헤드랜턴이 앞길을 훤히 비춰주긴 하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오늘의 산행은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기에 긴장하며 걸으니 힘이 배로 든다. 한 시간 반을 걸었을까. 선두가 앞에서 배낭을 풀고 쉬고 있다. 이제 동이 터오니 잠시 쉬며 아침을 먹자고 한다. 오전 6시30분이다.
날이 밝아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을 1시간 가량 오르다 보니 서서히 거대한 돌들이 장관을 이루며 오르막길을 만들어 내는데 감탄은 잠시, 바위 사이 사이를 안간힘을 쓰며 오르고 있는 선두를 바라보니 앞이 캄캄해진다. 그 동안 뉴욕 캐츠킬로 많은 산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큰 바위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난생 처음이다. 이리저리 돌 틈을 뚫고(?) 기어 오르는데 왜 왔나 싶을 정도로 힘이 든다. 아래를 쳐다보면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한 낭떠러지고 위를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바위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8시25분경 잠시 밑을 내려보며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선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중간에서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르고 있다. 사진을 찍다가 너무 힘이 들어 내려올 때 찍기로 하고 정상에 오를 때까지 다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사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지만 말이다.
다 왔구나 싶으면 또 올라야 하기를 몇 번 하고 나니 이제 대평원 같은 평평한 언덕이다. 여기가 정상인가 했더니 앞으로 한 시간을 더 가야 된단다. 가는 길 전체를 로프로 둘러쳐 좁다란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주변에 자라고 있는 고산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넓은 벌판 중앙에 일부러 갖다 놓진 않았을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다. 철학자이며 자연학자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846년 카타딘을 올라 최초로 북부 메인주의 자연을 'The Maine Woods'라는 글을 통해 알렸다는 내용의 동판이 그 바위에 새겨져 있다. 내가 평소 존경하던 분도 지나쳤던 길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며 그가 느꼈던 감정을 찾아 보려고 잠시 시간을 멈추어 본다.



오전 9시35분에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카타딘이라고 크게 쓰여져 있는 팻말 앞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이곳 카타딘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마지막 종착지인 관계로 많은 에피소드가 연출되는 곳이기도 하다는데 수개월간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와서는 팻말을 붙잡고 입을 맞추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한단다.
나 역시 감격에 겨워 주변을 맴돌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홀연 팻말 앞에 호리호리한 미국 여자 한 분이 흐느껴 우는 게 아닌가. 울음이 멈추길 기다렸다가 혹시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끝마쳤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말로만 듣던 카타딘의 에피소드인지라 나도 모르게 반가워져서 말을 건네고는 기념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4년에 걸쳐 구간 종주를 하고 드디어 오늘 종지부를 찍는다며 내게 비디오 촬영을 부탁하며 아이폰을 건넨다. 부모님께 대한 인사를 시작으로 울음 섞인 목소리로 감격의 순간을 약 3분간 동영상으로 남기고는 팻말에서 내려와 배가 고프다며 자리를 떴다.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혼자 대장정의 막을 내린 프린세스 라이스양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나 역시 눈시울이 젖어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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