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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LA 무용계를 돌아보며 (1)

이병임·무용평론가·우리춤 보전회 회장

벌써 한해를 돌아봐야 하는 시간. 원로 무용인 이병임 회장(우리춤 보전회)의 30여년에 걸친 LA 무용계 활동을 돌아보는 기고를 연재한다.

1980년 미국에 이민온 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전통무용의 정통성을 뿌리 내리기 위해 힘써온 그가 '무용에도 한류가 일어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내놓는 미래를 위한 발전적 회상기다.

1980년 1월의 비 내리는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를 데리고 LA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USC 카운티 병원으로 이송되며 시작된 나의 미국생활은 병원에서 의식을 잃은 채 사경을 헤매다 며칠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하는 흔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며칠 만에 눈을 떠보니 친정식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소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나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병역관계로 한국에 두고 온 아들과의 이별이 비행중 내내 나의 의식과 마음을 짓눌렀고 결국 약해진 몸에 급성 폐렴이 발병한 것이었다. 가족들의 보살핌이 없었던들 난 그때 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후 병원 드나드는 일이 본업(?)이 되어버린 나는 그렇게 5년여의 세월을 흘려보내면서도 머리에서는 언제나 '내가 무용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떠나온 한국 무용계서 못다한 일들 그리고 내가 무용계에 진 빚들을 되새기며 한국무용계와 더불어 창작의 불모지인 이곳에 창작예술을 심는 일이 할 일이라고 생각됐다. 기능인은 존재하지만 작품창조의 예술활동은 찾아볼 수 없는 LA의 척박한 풍토에서 무용인들에게 창작만이 예술이라는 경각심을 주는 일이 나의 역할이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 결과 나의 자전적 무용극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한인 이민사회 최초의 자전적 무용극 '누가 나를 만들었소?'는 바로 무용계의 안일주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누군가 먼저 창작무대를 열어 시작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시도된 작품이다. 나 자신 이미 무대를 떠난 지 오래였고 대학 강단과 평단에서 이어진 나의 무용계 생활도 실기가 아닌 이론에 치중했던 시간들이었기에 나 스스로 무대에 선다는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온 마음과 몸을 투입해야 하는 무용 연기에 다가설 수 있는 몸의 상태도 아직 아니었고 더구나 무용의 소재가 나의 지난 삶을 소재로 한 자전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나 자신을 관객들에게 벗어던지는 용기와 솔직함 그리고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품 의도가 과연 설득력있게 전달될까 하는 우려도 큰 정신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화여대 무용과 출신의 후배들이 나의 창작무용극 제안에 선뜻 응해주었고 몇 달의 고민과 고통의 연습 과정을 거쳐 1986년 7월 31일 당시 KTE문화센터에서 무용극 '누가 나를 만들었소'를 공연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한인사회에서는 처음 대하는 창작무용극에 대하여 신선한 충격과 함께 커다란 반향이 일었다. 이런 무용공연도 있구나 하는 의아함과 무대 위에 모든 걸 벗어던진 나의 도전적 용기에 대한 감탄의 소리도 들려왔다. 당시 대한민국 예술원 이해랑 회장은 미국에 가서 무용극을 올린다니 그 정열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는 축사를 보내왔다. 당시 조경희 예총 회장도 창작이라는 생명력이 없는 곳에 솔선수범의 자세로 무대에 직접 오른 나의 예술가적 기질과 자세를 격려해주는 축사를 보내왔다.

그러나 근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LA무용계를 돌아보는 내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제 노병이 되어 사라져야 하는 몸. 그러나 오늘도 소리높여 무용계를 질책할 수 밖에 없는 내 마음. 60여년이 지난 세월을 무용과 함께 살았고 무용 안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은 오로지 무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편집자 주: 기고문의 내용은 기고자의 의견으로 중앙일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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