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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고구마 수확의 즐거움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지난 1년 정말 '사심' 없이 농사를 지었다. 초보 농사꾼으로서 욕심을 내는 게 애초부터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시골에서 추수가 한창인 요즘 내가 흉작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 여름과 초가을은 날씨도 농사를 받쳐주지 않았다. 비가 내려야 할 때는 가뭄이 들었고 정작 햇빛이 쨍쨍해야 할 때는 호우가 빈발했었다. 누가 봐도 흉작은 피할 수 없는 게 우리 집 현실이었다.

헌데 엊그제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별 생각 없이 고구마를 캤는데 대풍작이었던 것이다. 기대한 적이 없었던 수확이었던 터라 더욱 놀랍고 기뻤다. 시골 어른들이 "농사가 잘 되면 거둘 때 뿌듯한 마음이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좋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랬다.

수확한 고구마는 돈으로 따지면 100만 원도 채 안 되는 액수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수백만 혹은 수천만 원어치의 돈벌이를 했을 때에 뒤지지 않았다.



원래 고구마는 밭 한 구석의 1500 스퀘어 피트 가량되는 면적에 심었었다. 하지만 여름철 극심한 가뭄 때문에 1/3 이상의 고구마가 심은 지 보름도 안돼 다 말라 죽었다. 결국 1000스퀘어 피트 즉 30평이 좀 넘을까 말까 하는 면적에 자리를 잡은 고구마만 간신히 여름을 넘기고 수확기까지 온 것이었다.

고구마는 아버지와 함께 캤는데 하루 온종일이 걸렸다. 가마니 기준으로 5개 가량 무게로는 200kg이 훨씬 넘는 고구마를 거둘 수 있었다.

너무 즐거워서 고구마를 캐기 무섭게 가까이 사는 이모네와 고모네에게 한 상자씩 배달해 줬다. 오토바이 뒤에 고구마를 넣은 궤짝을 싣고 고모네와 이모네 집으로 달릴 때는 정말 신났다. 또 고구마를 심지 않은 옆집 할아버지에게도 얼마간의 고구마를 나눠줬다.

지난 일요일에는 이 곳 이스트 밸리의 우리 집을 찾은 아이 엄마의 친구들에게도 쇼핑백 가득 고구마를 담아줬다. 오는 주말에는 내 친구들을 불러 고구마를 한아름씩 안겨 줄 예정이다.

수확한 농작물을 나눠 줄 때 기분은 음식 나눠 먹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음식은 나눠줄 때 맛이 있을까 입맛에 맞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 마련인데 고구마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루기도 쉽거니와 쉬 상하거나 변질될 가능성도 적은 탓이리라.

지난 여름에 캔 감자도 비교적 밑이 잘 들어 즐거웠는데 한창 추수철인 이 계절의 고구마 풍작이야말로 더 없이 뿌듯하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나 둘씩 나무 잎새가 떨어져 날리고 머지 않아 추위가 찾아올 게다.

고구마처럼 비교적 저장성이 좋은 음식은 겨울 간식은 물론 가끔씩 밥상에 올릴 수 있는 주식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동면을 하듯 다가올 농한기를 맞아야 하는 나로서는 고구마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먹을 거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굶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상징적 식량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는 얘기다.

일종의 겨울철 비상식량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 그 즐거움을 무엇에 비견할 수 있으랴. 올해 고구마는 수확량만 많은 게 아니라 맛도 일품이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참 맛을 고구마가 새삼 느끼게 해줬다고나 할까. 가을 햇살과 노랗게 또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들이 유달리는 안온하게 느껴지는 가을의 한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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