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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나이 먹는다는 건 오래된 미래 속으로 들어가는 것

우리 집의 평균 나이는 약 76세다. 최고령은 서너 달만 있으면 100세가 되는 할머니 최연소자는 언제나 재롱둥이 역할을 해야 하는 50대 초반의 필자다.

할머니도 그렇고 각각 70대 중반과 후반인 어머니 아버지 또한 나름의 개성이 상당한 분들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각자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노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세 분과 함께 한 생활은 노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몸으로 느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주 체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노인들은 그들만의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지금껏 내가 가까이에 관찰한 노인은 모두 다섯 분이다. 현재 나와 한 집에 사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외에 장모와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마디 한다면 내게 할머니는 두 분이다. 현재 살아계신 할머니 말고 또 다른 한 분은 1990년대 후반에 돌아가셨다.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우리 집 노인들은 음식을 과도하게 챙기는 경향이 있다. 밥이나 반찬을 소모시킬 수 있는 양 이상으로 많이 만들곤 한다. 그리고 반찬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을 때도 먹고 남을 정도로 큰 그릇에서 듬뿍 덜어내는 경우가 많다.

'음식 손'이 큰데 따르는 결과는 뻔하다. 냉장고를 뒤져보면 한 달도 더 된 오래된 음식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닌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만들어 놓고 하루 이틀 내에 소모시키지 못하다 보니 빚어지는 일이다.

고집이 세다고나 할까 아니면 신념이 확고한 것도 우리 집 노인들의 공통점이다. 얼마 전 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가 연탄불을 꺼뜨렸다. 연탄불을 다시 살리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연탄불을 그런대로 살려내는 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방법을 결코 따르지 않으려 했다. 결과는 계속된 실패였고 결국은 이튿날이 돼 내 손으로 연탄불을 되살릴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자신만의 취향을 고집하는 건 아버지와 비슷하다. 얼마 전 어머니가 거실에 있는 커다란 책장의 위치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하길래 손을 빌려 드렸다. 내 생각으로는 원래 자리에 있는 게 나아 보였는데 어머니는 아니라는 거였다. 헌데 사나흘 지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책장이 원위치 돼 있었다. 가구나 물건의 위치 옮기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은 '도로 그 자리' 공사를 1년에 최소 네댓 차례씩은 치러야 한다.

고집에 관한 한 그러나 누구보다도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가 왕이다. 어떨 때는 할머니가 자신을 신이라 여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신이 강하다. 때때로 할머니가 틀렸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물증을 들이밀며 증명해도 "글쎄~ 그럴 리가 없다"며 말끝을 흐릴 뿐 실수를 결코 인정하는 법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와 친척 등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이날 이때까지 한번도 판단 실수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는 분이다.

매사 마음만 앞서는 것도 할머니나 어머니 아버지가 다 똑같다. 예컨대 오전 10시에 볼일을 보러 외출할 계획이라면 9시쯤부터 옷을 다 차려 입고 서성이거나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외출 때 이 분들을 차로 모셔야 하는 건 내 몫인데 어른들이 서두르면 나 또한 마음이 급해질 수 밖에 없다. 마음이 쫓기다 보면 어떨 때는 정작 챙겨야 할 것을 깜빡 잊기도 한다.

장황하게 우리 집 노인들의 흉을 봤다. 하지만 실은 이게 가까운 장래 내 얘기라는 걸 나는 안다. 아니 내 딸과 아들의 눈에는 가까운 장래가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오래된 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노인들과 함께하는 시골생활을 통해 지금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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