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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전성시대

살기 팍팍한 요즘 FunFun함으로 승부

파도처럼 밀려오는 'B급 문화'
싼티·루저·마이너…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
상위서 표현 할 수 없는 틈새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


'강남 스타일'의 싸이는 자신이 만든 비디오를 모니터하면서 "완전 양아치군!"하고 박장대소를 했다. 그는 자신이 B급 문화의 전도사임을 자처했다. 어떤 사람은 싸이가 스펙은 A급이지만 천성은 저속한 B급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그의 노래가 B급을 지향하긴 하지만 치밀한 계산으로 이루어진 특급이라고도 한다. 대중문화를 굳이 이분법적로 나누려고 하는 사고 자체가 낡은 것이긴 하지만 화려한 싸이의 귀환은 B급문화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B급 문화는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 문화(sub-culture)를 의미하지만 고상한 틀에 갇힌 상위문화가 표현할 수 없는 빈 곳을 채워주면서 대중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문화의 어떤 특성이 'B급'이라는 비하적 부류를 낳게 했을까? 대체로 적은 비용 기술적인 부족함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주제 그리고 소수의 강한 매니아 집단을 보유한다는 특성이 있다. 여기에는 저예산 영화 인디 음악 무협지 판타지 소설 그리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웹카툰 등이 속할 수 있다. 흔히 키치(Kitsch)문화와도 공유점이 많다. '키치'는 미술용어에서 비롯됐는데 '조악한 것 가짜 또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 등을 뜻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복고'가 문화 트렌드로 떠올랐는데 촌스러움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패턴과 원색의 색상들이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런 복고 열풍도 일종의 '키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싼티 루저 마이너 등 비교해서 수준이 낮다는 의미의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 촌스럽고 천박한 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깊은 의미와 통찰력은 약하기에 재미는 더 배가된다. 옛날 장터의 사당패처럼 훅 바람처럼 몰고와서 한바탕 신나게 놀아대고는 사라지는 저자거리의 문화다. 그리고 그 위세는 점차 확산돼 특정 계층만의 향유가 아니라 "그래 내가 B급이다"하고 당당하게 외치며 전면에 나선다. 여기에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그 파급 속도는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다. 그래서 요즘 B급 문화는 가볍고 저급한 '싼티'의 때를 밀어낸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이들에게 통쾌함을 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낸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는 "재미가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면서 재미를 중심으로 문화가 재편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항상 남들 위에 서야하고 인생 고급화에 몰두하는 현대인들에게 B급 문화는 솔직함으로 살아있기에 대중들 안에 감춰진 욕구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이러한 문화적 양상은 고급 문화라고 생각되었던 예술과 패션 등 문화 전반에 '높은 콧대'를 꺾어버린 센세이션도 일으킨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코카콜라도 부랑자가 마시는 코카콜라도 모두 같은 것이며 똑같이 맛있다"고 말하며 문화 평등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파도같이 밀려오는 B급 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부분이 부각되어 문화의 질을 떨어드릴 수 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여자 아이돌이 핀업걸(벽에 걸린 사진 속의 여자를 빗대는말)의 차림새로 브라운관을 누비는 것이나 김구라의 막말 개그 선정적인 비디오 등의 확산은 진중하지 못한 가치관의 양산으로 사회적인 무리를 가져올 수 있다. 박은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술적인 깊이나 진지함보다는 가볍고 소비적이며 코믹한 성격을 지닌 것들이 미디어를 누비게 되면 문화 자체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중 문화는 개인의 취향과 정서에 따라 호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급수'를 따져 구분하는 것은 또다른 계층의 선을 긋게 되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치관과 철학은 매우 중요하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것은 그 안에 탄탄한 음악적 자질과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패티김과 임재범이 뛰어난 가창력으로 심금을 울리면 A급이고 싸이가 말춤을 추며 저돌적인 가사를 내뿜으면 B급이라는 문화적 편견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예전 판소리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던 B급 문화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B급도 A급이 된다.

문화는 우열의 가름으로 계층의 위화감을 조성하기보다는 향유하고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는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이 타당하다.


*가수 '싸이'를 통해 본 B급 문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보면 최근 문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B급은 어둡고 칙칙하고 비주류의 성향을 표현했지만, 요즘 B급은 즐거움과 자부심이라는 코드가 첨가됐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교수는 "요즘 B급은 A급에 대해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다.,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그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사실 싸이의 음악과 비디오는 B급 문화가 아니라, B급 문화를 내장한 A급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인의 기본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최첨단 IT기술을 동원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싸이는 부유한 강남 출신이지만, 고급스러움보다는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비주류의 키치문화를 내세우면서도 저급하지 않은 아티스트로서의 선을 영민하게 잘 포착하고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주류와 금기에 반기를 드는B급 문화는 국가를 막론하고 경계심을 풀어주는 보편적인 정서이며, 인종과 성별, 나이를 넘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문화 코드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음지에 머무르던 B급 문화를 양지로 이끌어낸 것이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노래하는 장면, 목욕탕에서 수영하는 장면, 진지한 얼굴로 놀이터에서 선탠하는 장면, 도심 한 복판에서 말춤을 추는 장면' 등에서 나오는 '엽기코드'는 미국식 B급 유머를 떠올리게 하는 코믹함이 있다. 그래서 난공불락이던 미국에도 열렬한 환영 가운데 입성했다.
싸이는 말한다. "강남은 한국의 베벌리힐스와 같은 곳이다. 춤, 장소, 뮤직비디오 주인공 모두 베벌리힐스 스타일이 아닌데도 계속 베벌리힐스 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게 포인트다."
그에게는 인생 반전의 묘미가 있고, 궂은 지난 날도 통쾌한 웃음으로 풍자하며 날려버리는 화끈한 여유가 있다. 양지의 볕을 흠뻑 받는 싸이의 'B급 스타일'은 창조적인 재구성으로 B급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었다.


*B급 문화가 낳은 스타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전형적인 B급 예술을 추구했다. 무대 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는 기행적인 시도를 했다. 그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과 소재를 예술의 도구로 삼음으로써 상류층 문화를 꼬집었다. 그로 인해 백남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행을 일삼는 예술인'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지금 그는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시대를 50년 앞서 간 위인'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B급 문화의 전형이었던 백남준 작가의 작품들이 지금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A급이 됐다는 것은 본질은 그대로라도 시대에 따라 문화적 가치는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주류 문화가 주류 문화로 편입되는 현상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대중들의 포용력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내에서 B급 문화를 제대로 누리기 시작한 1세대는 1980년대 학창시절을 거친 X세대들이다.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지고, 1990년대 서태지를 선두로 한 신세대 음악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이후 곡들은 사회비판적 가사와 파격적인 음악성으로 B급 문화의 막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딴지일보도 B급 문화의 기수로 꼽힌다. 언론 형식을 빌려 세태를 풍자하고 해학의 묘를 살려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예능에서는 B급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들이 두터운 매니아 층을 만들어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무한도전', '라디오 스타', 무릎팍 도사' 등 슬랩스틱 코미디와 통속적인 대사가 솔직함으로 다가와 관객의 열광적 몰입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특성은 '독특하다, 재미있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에 의견이 모아진다.

록이나 펑크, 힙합, 재즈 등도 예전엔 B급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주류 대중음악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지금 음악을 이끌어가는 제작자가 되어있고, 책가방을 둘러메고 극장을 찾던 학생들은 영화계의 주역이 되어있다. 강남의 오렌지족이 난무하던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누볐던 싸이는 자신의 기질을 당당하게 발휘하며 단숨에 월드스타가 됐다.
한국의 한류는 어쩌면 B급 문화의 건강한 외출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뒤로 숨지않고 솔직하게 표출되는 정서는 긍정적 문화의 걸름망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세계적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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