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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인이며 소년이다…LA온 대한민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

감히, 신중현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음악은 무엇이냐고. 기타는 무엇이냐고. 그리고 또 물었다. 남은 꿈은 있냐고.

그가 답했다. 음악은 '나 자신'이며, 기타는 '가장 완전한 악기'이고, 남은 꿈은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음악'이라고.

나이 탓일까. 가끔은 잘 안 들린다며 다시 질문을 청했고 몸을 숙여 귀를 갖다대곤 했다. 키는 더 작아진듯 보였고 강렬한 눈빛도 조금은 무뎌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그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호방했고, 기개가 넘쳤다. 많은 것을 초월한듯 보이는 한편, 여전히 더 큰 것을 꿈꾸는 듯 했다. 자그마한 체구, 백발의 신중현은, 여전히 거인이며 소년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이다.

☞신중현의 LA공연



오늘(28일) 오후 8시 웨스트LA 엘 레이 시어터에서 열린다. 유명 레코드 레이블 라이트 인 더 애틱 10주년 기념 콘서트로 60년대 사이키델릭 포크 아티스트로 유명했던 식스토 로드리게즈와 함께 무대에 선다. 입장권은 모두 매진됐다.

내겐 음악 밖에 없고,
아는 것도 음악 밖에 없으니,
그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음악 만들겠다

내 삶에 있어 음악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음악이 없으면 나도 없어지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이 내 음악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서는별 상관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드는 것 아닌가. 젊은 시절의 음악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중년과 노년의 음악은 또 그 나름대로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을 못하는 분들도 많지만 난 그걸 이겨내고 싶다. 그래서 엄청난 노력을 해 왔다. '노년기에는 이런 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들려드리고도 싶고 음악이란 가치가 무한대라는 것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음악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니 희망도 얼마든지 있다.
은퇴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2006년에 한차례 은퇴 발표를 하고 순회공연을 한 후 음악을 관뒀었다. 그러다 2009년 펜더(세계적 기타 제조사)로부터 나만을 위한 기타를 헌정 받았다. 그때 하늘에서 '아직 할 수 있는 걸 왜 그만두느냐. 이 좋은 기타를 줄 테니 다시 한번 해봐라'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늘이 내려 준 기타의 소리를 대중에게 들려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안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시 음악을 하게 됐다. 이젠 은퇴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하는 세 아들 신대철신윤철신석철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을 하고 있다. 그 애들이 음악을 한 거 자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길로 갔으면 부모 속을 많이 썩이지 않았을까. 다행히 아버지가 어느정도 듣는 귀가 있어 '아예 희망이 없는 애들은 아니구나'쯤은 일찌감치 파악했었다. 이후엔 아이들에게 모든 걸 맡겨놓은 상태다.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셋 다 가치있는 음악을 하고 있다. 다만 워낙 한국의 음악 수준이 얕다보니 한 차원 넘어선 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버지로서 나는 집안일에 철저한 편이다. 제사 지내고 산소 벌초하고 족보 따지는 것 등을 아주 중시한다. 남들은 '음악하는 집안'이라고 편견을 갖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만은 엄격하게 지키고 아이들도 잘 따라주는 편이다.
지금의 한국 가요계를 보노라면 기특하다. 후배들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하면 나는 늘 '잘하고 있다'고 답한다. K팝이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깊은 음악성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새로운 의욕이 이뤄낸 성과는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마음껏 해보라'고 내버려두고 싶다. 이러다 보면 결국 자기 음악을 찾아서 나처럼 노년까지 음악할 수 있는 사람도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한국의 음악 발전을 위해 방송매체에서 대중성만 따지지 말고 수준높은 음악도 자주 틀어주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록의 대부라는 칭호는 마땅히 받아들인다. 그러한 평가를 수용하고 과시함으로써 젊은 뮤지션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배들이 나를 보며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희망으로 욕심과 의욕을 갖고 음악을 했으면 한다. 물론 과분한 호칭이다. 하지만 절대 거부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내가 대한민국 록의 대부다. 그러니 너희도 열심히 해라'라는 메시지다.
기타는 최고의 악기다. 완벽하다. 가장 심플하면서 가장 광범위하다. 6줄로 몇 음 연주하지도 못하는 것 같지만 하다보면 안되는 음악이 없다. 리듬과 멜로디 모두가 가능하다. 고전 음악부터 최첨단의 음악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악기는 기타 뿐이다. 통기타부터 생겨났지만 일렉기타로 변화되며 컴퓨터 시스템까지 모두 섭렵해 나가고 있다. 간편하게 누구나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나는 불행한 음악가였다.최악의 상황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일찍 고아가 돼 남의 집에 가 밥 얻어 먹고 일하며 비참하게 몰래 기타를 쳐 왔다. 그나마라도 기타가 있었기에 이만큼이나 살 수 있었겠지만 좀 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좋은 악기를 갖고 맘대로 연주를 할 수 있었다면 더 훌륭한 음악을 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음악 인생이란 게 너무 피곤하다. 행복한 시간은 대중 앞에서 음악을 들려드리고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뿐이다. 그걸 빼면 음악 하는 인생은 너무 비참하다. 왠만한 의지로 음악을 직업삼는 건 정말 힘들다. 난 음악 빼면 할게 없었다. 체격을 봐도 그렇고 생긴걸 봐도 그렇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음악이라도 붙들고 있어야겠다 싶어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에겐 팬이 없다. 그냥 내가 어거지로 들려드리는 거다. 누구든 그걸 귀여겨 들어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다. 내 음악은 대중성 없단 소릴 많이 듣는다. 워낙 음악을 파다보니 늘 '차원'을 중시하며 음악을 만들어왔다. 세계 어느 나라 곡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한 차원 높은 한국 음악 만드는게 늘 나의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대중이 편하게 놀고 춤추는 데선 절대 어울리지 못했다. 그저 골수로 음악 파는 몇몇 분들이나 좀 좋아해주시는 것 뿐이다.
후배들이 꾸준히 음악을 리메이크해주는 것은 정말 좋다. 내가 하면 어려운데 그네들이 하면 쉽고 재미나다. 대중들도 좋아하고 덕분에 내 노래도 많이 알려지니 고맙다. 더 많이 해 줬으면 좋겠다.
더 이루고 싶은 꿈도 물론 음악이다. 내겐 음악 밖에 없고 아는 것도 음악 밖에 없으니 그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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