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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세상] 수수하다는 말이 좋다

조성자/시인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두려워 헤아리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 크게 뜨면 뜰수록/ 이 눈부신 음식들/ 육신을 지탱하는 독으로 보입니다// 하루 세 번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내 몸 속에 들어와 고이는/ 인간의 성분을 헤아려 보는데/ 어머니 지구가 굳이 우리 인간만을/ 편애해야 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문재 시인의 '지구의 가을' 부분-

수수하다는 말이 요즘 참 별나게 좋다. 수수한 사람, 수수한 차림새, 수수한 살림살이 등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러나 제격에 어울린다는, 또는 사람의 성질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

식탁은 포만해져 지고, 입성은 화려해 지고, 살림살이는 최고만을 지향해 오던 나의 속된 기호가 수수하다라는 말 앞에 부끄러워진다.

얼마 전 친구가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30년 전 이민 올 때 가져왔다는 개다리소반에 현미로 만든 김밥 한 접시와 평소 그녀가 즐기는 차 한 잔이 놓여 있는 사진이었다.

개다리소반은 상다리가 개의 다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서민의 밥상이거나 차상으로 쓰이던 것이고 보면 명장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기보다 궁색을 면하려고 기술을 익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으로 주로 소나무나 피나무로 만들었다.

개다리소반은 수수한 상이다. 어느 고졸한 선비의 평상에서 애환을 함께 하기도 하고 다도를 아는 아낙의 마루에 놓여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했던 것이다. 개다리소반은 소박한 밥상이다. 국과 밥, 찬이래야 두어 개가 전부인 최소한의 밥상이다.

우리가 배고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의 질을 논하게 되면서 우리의 밥상은 언제나 과잉이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껏 최대치를 겨냥하게 되어 호화로워졌고, 뷔페라는 이름의 식단에 이르러서는 먹는다는 참된 개념은 사라지고 음식과의 전투처럼 양적으로 제압당하곤 한다.

현대 질병의 원인 대다수가 많이 먹어 탈인데도 우린 여전히 먹는 타령이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번번이 무너지는 신념이 있는데 모자라는 것보다는 나으니 버리더라도 많이 장만한다는 소신 아닌 소신이다.

잘 사는 것의 정상은 어디인지. 한 때 나도 인생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만이 가치인줄 알았다. 많이 소유하는 것만이 미덕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인생 중반을 넘기게 되면 삶이 호화유람선처럼 만국기 펄럭이고 그렇게 끝까지 이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수수하다는 말을 가슴에 넣고 살다 보니 으리으리한 인생이란 게 그다지 매력이 없다.

며칠 전 남편과 한 모임엘 다녀왔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주제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 뭐 그런 하루였는데 부분부분의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소박한 밥상을 대하면서 진정한 음식의 감사란 게 무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닭고기 한 점과 감자 몇 조각 그리고 브로콜리, 주먹만한 현미빵 하나를 버터에 발라먹는 저녁식사는 지구가 왜 인간만을 위해서 진땀을 흘려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었다. 하나님의 편애를 지나치게 남용하며 살아온 내가 속되 보였다.

삶의 형편이 전에 없이 좋아진 시대에도 목적 없는 최고의 지향점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허기가 진다. 욕망의 외피를 조금만 벗겨낸다면 존재감의 유치한 허명을 걷어 내고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따른다면 수수하지만 윤기 나는 삶의 속살이 만져질지도 모른다.

지구는 벌써부터 우리에게 경고하는데 우리는 들을 귀를 외면하고 여전히 지구의 목을 조이고 있는 형국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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