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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 일기] 차라리 환갑잔치를 하며 장수를 축하할 때가 좋지 않았나…

9월 10일로 귀국한지 정확히 1년이 됐다. 10년 반 가량의 미국생활을 일단 접고 돌아온 지금 솔직히 미국이 그립다. 미국이 자꾸 생각나는 건 지난 여름의 지긋지긋한 기억이 생생한 탓이다. 내게 습도가 높은 더위는 그 자체로 지옥이다. 1년 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유일한 걱정이 습기가 많은 여름날씨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지난 7~8월 두 달은 사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화씨로 기온이 90도 이상 올라가도 로스앤젤레스처럼 습도가 낮으면 얼마든 견딜 수 있다. 하지만 80도라도 습기가 많으면 그건 내게 죽음이다. 어쨌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요즘은 정신이 좀 돌아왔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충남 공주의 이 곳 이스트밸리로 직행할 때 '귀연'을 꿈꿨다. 귀연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내게는 마땅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혹자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꼭 한국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야 했느냐고. 글쎄 이게 비교할 성질의 것인지 모르지만 내겐 미국 자연이 맞다. 미국의 모든 자연이 아니라 아이다호나 몬태나 와이오밍 같은 자연이다. 알래스카라면 더 좋겠다.

그러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까지 이분들과 사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오십이 넘은 나는 우리 집 '막내'다. 내년이면 100세 되는 할머니와 각각 70대 중반과 후반인 어머니 아버지에게 나는 영원한 어린아이일 게다.



조금 독특한 가정환경이라면 가정환경이겠다. 반면 이스트 밸리는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지난 1년은 내게 '실전 귀연'의 기간이었다.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귀연과 생활 속의 귀연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에게 지난 1년 귀연의 키워드는 돌아보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늙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 평균 연령 76세의 우리 집에서는 나이 먹는 게 무엇보다 큰 사안이다. 노화 자체가 귀연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시간 문제일 뿐 누구나 다 늙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는 늙는 것이 무엇인지를 매일 온몸으로 묻는다. "산다는 게 무엇이냐." 장모도 똑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미국에서 돌아오기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사위를 알아보던 장모는 치매가 더 심해졌다.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해답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할머니는 식구들에게 '죽는 약'을 찾아달라며 매달린다. 그러나 할머니는 식욕이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좋다. 반찬을 무척 가리는 편이어서 세끼 밥상차리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장모는 나를 항상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깎듯이 존댓말을 쓴다. 아내 즉 자신의 딸은 용케도 알아본다. 내가 그 딸의 남편이라고 수백 번 설명해도 여전히 나는 장모에게 선생님이다.

장모는 사위가 사는 이스트밸리에 놀러 오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매번 선생님이 돼야 하는 나는 솔직히 불편하다.

어른들이 출제한 문제의 해답을 못 찾는 나는 요즘 부쩍 불경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만 60세로 장수를 축하하며 환갑잔치를 할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곤 한다.

늙는 문제에 비하면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은 그런대로 답이 나오는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릴 적과 기후가 많이 달라졌다. 변화된 기후는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데 따른 업보일 가능성이 크다. 자연의 섭리에 더 귀를 기울이라는 경종일 수도 있다.

폭풍 폭우 폭설 등 '폭'자가 들어가는 기상 현상에 우선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열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집안도 손볼 데가 있으면 볼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시골 생활도 사람이 하기는 도시와 마찬가지이다. 빛과 물 바람 흙의 메시지는 좀 들리는데 역시 사람(식구들)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는 쉽지 않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장모가 내민 숙제가 풀리는 날 귀연이 무엇인지를 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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