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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제왕' 엘비스는 늘 허기졌던 식탐가였다

세기의 인물들을 매혹시킨 '맛'

나폴레옹
빨리 먹는 습관 때문에 항상 위염
전투 중에도 닭요리 즐겨 먹어
베토벤
'커피' 사랑한 마성의 음악가
한잔에는 원두 60알 세어넣어
카사노바
'바람둥이 대명사'가 사랑한
이탈리아산 구더기 치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 중에 이것을 빼놓을 수 없다. 맛으로, 향으로 인간을 현실과 탐미의 경지로 이끄는 ‘음식의 세계’. 기본적으론 배고픔을 위해 음식을 찾지만, 거기엔 ‘기억’과 ‘감정’이 존재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마시는지는 마음과 닿아있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먹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성품과 생활을 좌우하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함께 있었던 ‘음식의 역사’. 세기를 주름잡았던 역사의 인물 뒤엔 그들이 사랑하던 ‘음식’이 있었다. 그 음식들은 파란만장했던 그들의 인생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역사의 인물들은 왜 ‘그’ 음식을 사랑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와 ‘과잉’ 샌드위치

엘비스가 생애 마지막으로 했던 식사는 아이스크림 네 컵과 초콜릿을 듬뿍 씌운 비스킷 여섯 개였다. 병마와 사우며 죽어가던 순간에도 최고의 당도를 지닌 음식을 곁에 둔 당대 최고의 가수. 화려했지만 극도의 불안함과 달콤함이 극적으로 맞닿아 있다. 엘비스는 평소에 사탕, 아이스크림, 사과 파이, 햄버거, 감자칩 등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즐겼다. 특히 땅콩버터 바나나 샌드위치를 너무 좋아했는데, 한 쪽에는 땅콩버터와 바나나 썬 것을 얹고, 다른 쪽에는 버터, 꿀, 베이컨을 얹어 샌드위치를 만든다. 이것이 모두 4개가 기본으로 엘비스의 아침 식탁에 올라갔다. 한 번은 이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19명의 친구들을 이끌고 전용 비행기로 테네시주에서 콜로라도주까지 날아간 적도 있었다.

좀 과도한 감이 없지 않은 엘비스의 식탁은 남부 스타일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졌고, 한 끼 식사로 6000 칼로리가 넘었다. 엘비스는 6개로 만든 오믈렛, 베이컨 1파운드, 고구마 파이, 베이크드 콩, 버터밀크 비스킷, 머시멜로에 초콜릿을 끼워 먹는 문파이, 여기에 스니커즈 초콜릿 바를 끼워 먹었는데, 그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의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 ‘비만의 원흉’, 미국 ‘하류 문화의 유포자’란 비난도 들어야 했다.

‘스타는 미쳤다’(지안출판사)를 저술한 보르빈 반델로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엘비스에게는 퇴행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결코 성장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초라한 트럭운전사였던 엘비스는 록의 제왕이 되어 가장 많은 곡을 싱글 차트에 올렸고, 10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던 세기의 가수였지만, 흑인의 리듬을 가르쳐준 작은 시골 멤피스의 어린 기억에 허기졌던 아이러니한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나폴레옹과 치킨 마렝고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전쟁과 더불어 사는 인생이었다. 그는 황제가 되고 나서도 음식을 빨리 먹는 습관이 있어서 급할 때는 도구 대신 손가락으로 집어먹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위염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아픈 속을 달래기 위해 늘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어 배를 만졌다는 설도 있다.

나폴레옹은 ‘닭’을 사랑했다. 특히 전투의 추억이 담긴 ‘치킨 마렝고’라는 음식을 즐겨 먹었다.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란 기치 아래 알프산을 넘었던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마렝고에서 오스트리아군과 맞붙어 승리했다. 원래 전투 중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그가 요리사에게 특별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 때 가능한 식재료는 달걀 3개, 토마토 4개, 가재 6마리, 암탉 1마리가 전부였다. 요리사 뒤낭이 이 재료를 섞어 만든 닭요리는 나폴레옹을 감동케 했고, 그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치킨 마렝고’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또 하나의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말푀유’(mille Feuille: 천 개의 잎)라는 파이다. ‘요리사의 요리사’로 불리던 마리 앙투안 카렘이 만들어준 딸기맛 파이를 나폴레옹은 가장 좋아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아침과 저녁 식사 후 각각 커피 반 잔을 즐겼다. 가끔 두 잔씩 바시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나폴레옹의 연인 조세핀은 직접 주전자를 들고 딱 반 잔만 따라 주었다.

나폴레옹은 ‘통조림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기나긴 전투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병사들을 위해 저장 음식 콘테스트를 열었는데, ‘니콜라 아페르’란 병사가 발명한 고기 병조림이 선택된 데서 유래됐다. 이 병조림이 발명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나폴레옹의 음식은 그의 명성과 걸맞게 ‘전쟁 속에 핀 꽃’이었다. 절박한 상황이 만들어낸 절박한 음식이야말로 소박하지만 최고의 전설을 남긴 ‘최고의 음식’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크글로프’

카페와 디저트 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오스트리아였다. 17세기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빈에서 철군하면서 놓고 간 커피 원두가 처리되는 과정 속에서 슈테판 대성당 옆에 최초의 카페가 생겼다. 이 후 오스트리아에는 수시로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토론하는 전통이 생겼다. 18세기 프랑스에 시집 온 오스트리아의 마리 앙투아네도 고국의 케이크를 잊지 못했다. 특히 ‘크글로프’란 케이크를 즐겨 먹었는데, 맥주의 향미료인 홉(Hop)이 들어간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맛의 케이크다. 당시에는 왕비뿐만 아니라, 귀족의 부인이나 애첩들까지도 각각 자신의 이름을 딴 케이크를 갖고 있었다. 앙투아네트는 만찬이 끝날 때쯤 손님들에게 디저트를 제공했는데 이것이 ‘비스킷 글라스 앙투아네트’이다. 층별로 각각 다른 매력적인 맛들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했다.

민중들은 끼니를 때울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빵을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궁전 안에선 사치품인 설탕이 듬뿍 들어간 케이크가 풍년이었던 현실은 결국 왕조의 멸망을 가져온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달콤함’이 주는 유혹은 때론 역사 속에 참혹함으로 남는다.

▶베토벤의 진한 선율, 에스프레소

루이비히 반 베토벤은 ‘커피’를 사랑한 마성의 음악가였다. 그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다면 ‘계란’이란 대답만 나올 정도로 음식에 애정이 없었던 베토벤. 하지만 그에게도 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음식이 바로 ‘커피’였다. ‘마탄의 사수’를 작곡했던 베버가 “방 안이 온통 악보와 옷으로 어질러져 있으나, 테이블에는 악보와 용지 한 장과 끓고 있는 커피가 있다.”라고 회고했을 정도로 베토벤의 커피 사랑은 남달랐다.

베토벤의 커피 취향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엄격했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 때 정확히 커피 콩 60알을 세어서 넣었다. 손님이 와도 반드시 콩을 정확히 세어서 정성껏 갈아 유리로 만든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렸다. 요즘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에 약 50개의 커피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 베토벤은 최적의 에스프레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십 종류의 붉은 빛을 띤 원두를 혼합해서 마시기 위해 다양한 원두를 수집하기도 했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을 상실하고 울림과 진동으로만 작곡했던 베토벤의 삶은 참으로 고독했다. 그런 진한 예술가의 곁을 지킨 것은 깊고 진한 한 모금의 커피향이었다.

▶카사노바 , 구더기 치즈까지 사랑하다.

유럽에 향락주의가 팽배했던 1725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카사노바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18세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였고, 계몽주의자로서 40여권의 책을 남긴 희대의 저술가이기도 했다. 여자보다는 자유를 더 향유했던 그는 음식에 있어서도 자유분방함을 보였다. 뛰어난 미식가였던 카사노바는 굴과 달걀 흰자, 송로버섯, 숭어알 등 스테미너에 좋은 음식을 날것으로 먹었다. 18세기에 문을 연 베네치아 플로리안 카페에서는 지금도 카사노바가 애용했던 방에서 그가 즐겼던 향수와 최음제로 사용했던 초콜릿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카사노바는 특히 구더기가 들어간 치즈에 애착을 보였다. ‘애벌레 치즈’라고도 불리는 ‘카수 마르주’(Casu marzu:썩은 치즈)는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의 특산품으로 치즈 파리가 치즈에 알을 낳도록 유도해 구더기를 만들고, 이 구더기가 치즈를 파먹을 때 지방이 분해되면서 ‘눈물’이란 액체가 나온다. 카사노바는 이 치즈를 최음제 대용으로 먹었으니 희대의 바람둥이란 말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최적의 맛을 보기 위해 구더기까지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카사노바는 그가 원하는 만큼 염문을 뿌렸겠지만, 최후의 모습은 쓸쓸하고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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