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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장교가 꽃제비·탈북자 되기까지…이순실씨 시카고 집회, 강사도 참석자도 '눈물'

지난 달 31일 데스플레인 빌립보 교회에서 열린 집회서 강사로 나선 탈북자 이순실(사진)씨도, 참석자들도 많은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함께 시카고를 여행 차 들렀다는 이 씨는 “이렇게 미국에 올 수 있으리라 상상도 못했다”면서 “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받아준 시부모님은 내가 탈북자라는 것만 알았지 어떻게 살아온 지는 오늘 처음 듣게 된다”고 말했다.

간호장교였던 이 씨는 한 순간에 걸인이 되어 돌아가신 어머니 요강을 팔아 먹을 것을 구하는 신세가 된다.

이 씨는 “김일성 당시는 굶어 죽는 사람도 없었고, 전기가 끊이지도 없었다. 하지만 김정일 때는 낮에 봤던 아이들이 저녁이면 죽고, 군인은 군복을 팔아 식량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났지만 가정폭력을 당하고 원치않는 임신을 했다. 먹을 것이 없어 개미를 잡아먹었고, 역전에서 지나가던 노인이 유리로 탯줄을 잘라 출산을 했다.

“딸은 유리 독이 올라, 나는 굶어 죽기를 바랬다”면서 “행인들에게 젖을 구걸해 아이를 키웠다. 2살이 되도 걷질 못하더라. 아기를 못살릴 것 같아 탈북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탈북에 실패, 9번 북송당할 때마다 처절한 고문을 견뎠다. 알몸으로 검색 당하고, 불꼬챙이, 고춧가루 고문도 행해졌다.

드디어 10번째에 탈북에 성공하지만 중국 인신매매단에 의해 아이가 눈 앞에서 3천원에 팔려갔다.

“딸 아이가 그렇게 울던 것은 처음이다. 저기 가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아이를 하루라도 잊어본 적이 없다.”

한 교회로 도망친 이 씨는 6개월간 은신하다 다른 8명의 탈북자와 함께 몽골 야산으로 향하지만, 곧 사막 경찰에 잡히고 만다.

“그 중 한명이 조선족이었다. 속옷에 있던 낚시바늘과 쥐약을 보더니 딱하게 여겨 풀어줬다.”

하지만 그 때부터가 고비였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극심한 갈증은 소변으로 버텨야 했다. 영양실조로 몸의 털은 다 빠지고, 잇몸의 혈기까지 빠졌다.

“함께 있던 12살 짜리가 ‘엄마 나라도 잡아먹고 가요’하더라. 간간히 만나던 양떼 방목꾼에게 물을 얻어먹고 길을 물어 갔다.”

3개월을 걸어 도착한 UN 수용소에는 이미 400명의 탈북자가 있었다.

“탈북자들이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다. 죽을뻔한 고비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겹쳐 많은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

군인 경력을 살려 리더십을 발휘한 이 씨는 탈북자들을 전도하고 통솔하다 50일이 채 안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정은 때가 보안에 더욱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몰래 오빠와 전화를 한다. 오빠가 조국통일을 위한 것이라면 떳떳히 생활해라고 힘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현 기자 kjo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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