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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뾰족한 굽 '비비에'…캐리·마돈나 사로잡은 '마놀로 블라닉'

명품 구두 디자이너와 브랜드

여성에게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패션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하이힐을 놓고 남성들은 10㎝ 길이의 가느다란 꼬챙이 위에 몸을 싣고 어떻게 걷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길어 보이게 만드는 하이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구두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파격적인 디자인도 눈과 마음을 빼앗는 요소다. 현대 여성의 발을 위해 예술혼과 장인정신을 발휘해 온 명품 구두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만나보자.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190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는 5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관식 때 신었던 구두로 유명해졌다. 6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시대의 패션 아이콘인 재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들렌 디트리히 등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스로 "내 구두는 조각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세련되고 우아한 디자인을 잇따라 선보인 그는 꼬챙이처럼 가늘고 뾰족한 구두 굽을 만들고 '스틸레토(stiletto.못이나 단검처럼 날이 좁고 뾰족하다는 의미) 힐'이란 이름을 붙였다. 발이 투명하게 비치는 비닐 소재의 구두도 최초로 내놓았다. 로저 비비에 구두의 '시그니처 디자인(개인의 서명이나 얼굴처럼 고유한 특징을 가진 디자인)'은 구두 앞부분에 놓인 벨트 버클 모양의 네모 장식이다. 2002년 로저 비비에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 브루노 프로조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마놀로 블라닉과 그가 만든 크리스털 장식 구두. 스페인 태생에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 문학과 건축을 공부했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로 이사한 뒤 미술 공부에 심취하면서 구두 스케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9세이던 71년 뉴욕 여행길에서 친구인 파밀라 피카소(화가인 피카소의 딸이자 보석 디자이너)의 소개로 보그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를 만나 운명이 바뀌었다. 블라닉의 구두 스케치를 본 브릴랜드가 구두 디자이너를 권유한 것이다. 2년 뒤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다. 영국 여성잡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는 그의 등장을 두고 "신을 수 없다고 해도 기삿거리가 되는 구두를 창작하는 런던에서 가장 섹시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브랜드는 2000년 방영된 미국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스타 브랜드가 됐다. '캐리(새라 제시카 파커의 극중 이름)'가 "가방이나 반지 시계는 다 가져가도 좋으니 마놀로 블라닉 구두만은 건들지 마세요"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던 것이다. 블라닉은 자신의 구두를 "높고 섹시하지만 우아하다"고 표현한다. 앞코가 둥근 '메리제인' 스타일 구두를 스틸레토 힐에 뾰족한 앞코를 가진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캄파리'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결혼식에서 신었던 '세다라비' 구두는 스테디셀러 제품들이다.

지미 추(Jimmy Choo)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한 대사 중 유명한 것이 있다. "지미 추를 신는 순간 넌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야." 61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지미 추는 구두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제화공을 키우는 코드에이너스 대학을 졸업하고 이스트 엔드 거리에 자신의 매장을 차렸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모으게 된 건 패션 잡지 보그의 영국판 액세서리 에디터였던 타마라 멜런을 만나면서부터다. 개성이 뛰어나면서도 착용이 편한 신발을 찾던 타마라는 자신이 찾던 구두를 지미 추의 상점에서 발견했다. 당시 지미 추의 가게는 크진 않지만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위한 수제화를 만들 만큼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타마라는 지미 추와 함께 96년에 브랜드 '지미 추'를 론칭했다. 이후 이 브랜드는 수많은 레드 카펫에서 여주인공의 발을 장식했다. 지금은 브랜드 '지미 추'에 디자이너 지미 추는 없다. 2001년에 타마라와의 견해 차이로 결별해서다. 디자이너 지미 추는 지금도 구두를 만들지만 법률상 문제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쓸 수 없다.

크리스티앙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크리스티앙 루부탱과 16cm '킬힐'.64년 파리에서 태어난 루부탱은 16세에 극장에서 화려하고 감각적인 무용수들을 만나면서 구두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82년부터 크리스찬 디올의 구두를 만들던 찰스 주르당에서 일하게 됐고 80년대 후반 친구들의 도움으로 파리 시내에 자신의 매장을 열었다. 넉 달 뒤 미국의 패션잡지 W의 기자는 트렌드 취재를 위해 파리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두 명의 여성이 어떤 구두에 대해 수다를 떠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중 한 사람이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였고 이들이 칭송했던 구두가 크리스티앙 루부탱이었다. 이 일화가 기사화되면서 루부탱의 구두는 상류층과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게 됐다. 루부탱의 구두는 앞코가 뾰족하고 굽이 12㎝나 되는 스틸레토 힐이 대부분이다. 특히 빨간 구두 밑창이 상징이다.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

체사레 파치오티와 크리스털로 장식된 '마이클 잭슨' 구두. 이탈리아 치비타 노바 마르케에서 수제구두 장인 아버지 주세페의 아들로 태어났다. 볼로냐에 있는 아트 스쿨을 다닌 그는 가업을 물려 받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1980년에 론칭했다. 초기엔 패션 디자이너 베르사체 로메오 질리 로베르토 카발리 등의 컬렉션 구두를 제작해 명성을 쌓았다. 체사레의 구두는 '섹시함' '과감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 파치오티는 남성 구두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섹시하다'는 표현은 이 경우에도 통한다. 전통 스타일의 신사 구두에서 벗어나 앞코가 뾰족하고 징과 크리스털이 화려하게 박힌 디자인을 주로 선보였다. 이런 특징을 잘 증명한 사람이 고 마이클 잭슨이다. 잭슨이 애용한 은색 발목 부츠와 온통 크리스털로 뒤덮인 구두가 체사레의 작품이었다. 90년부터 여성 구두도 만들면서 디자인 상상력을 더욱 발휘했다. 시그니처 디자인으로는 구두 뒷면이나 밑바닥 때론 버클 부분에서 메달처럼 달랑거리는 뾰족한 금속 칼 장식을 꼽을 수 있다.

장 미셸 카자바(Jean-Michel Cazabat)

벨트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무명의 사진가였다.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필요했던 70년대 프랑스의 구두 브랜드 찰스 주르당에 판매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 구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99년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성 구두와 남성 구두 브랜드를 론칭했다. 카자바의 구두는 기발한 장식으로 유명하다. 가죽 위에 얇은 망사를 덧씌우거나 가죽을 땋고 늘어뜨리는 등 복잡하고 화려한 게 특징이다. 마돈나 제시카 알바 스칼릿 조핸슨 귀네스 팰트로 오프라 윈프리 등 수많은 유명인과 친분이 두터우며 최근엔 세라 제시카 파커와 관계가 돈독하다. 2011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구두 '엘로이스'는 파커에게 헌정한 제품이다. 한때 마놀로 블라닉의 추종자로 유명했던 파커는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때도 스웨이드 소재의 엘로이스를 신고 나타나 장 미셸 카자바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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