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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더디 가는 딸

이영숙/중앙일보신인문학상 입상

한국 갔을 때 일이다. 딸의 어릴 때 친구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식사하기를 원해서 같이 갔다. 식당에서 딸의 친구는 잠시도 쉬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참 버릇이 없는 아이라 생각했다.

어른들이 함께 앉은 자리에서 식사 중에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대화에도 끼지 않고 오직 휴대폰만 계속해서 만지고 있는 아이에게 약간의 불쾌감마저 느꼈다.

식사 후 헤어져 너는 절대로 저러면 안 된다고 딸에게 다짐을 받았다. 아무리 어리다고 이해를 하려해도 내 속이 좁은 탓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내 속이 좁아서라기보다는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 아닐까? 요즘은 함께 앉았어도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시대라는데. 깨어있는 시간은 언제나 전화가 손에서 떠나지 않고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카톡으로 대화하는 시대인 것을 내가 잠시 잊은 것 같다. 이제는 함께 앉아있는 부부도 각각 전화를 만지느라 마주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남편은 전화로 인터넷에서 페이스북 체크하고 아내는 카톡으로 친구들과 대화한다. 언제부터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이것이 세상이 좋아지고 문화가 바뀌어서 그렇다는 말을 하기에는 약간의 허전한 마음까지 생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살았던가. 친구들을 만나면 끊임없는 수다를 늘어놓고 깔깔거리며 웃고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다 못해 거의 닿을 만큼 가까이 하고 뚫어지게 서로의 눈을 보며 지내왔지 않았던가. 부부가 친구가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하는 직장동료가 마주앉아서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각각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다면 이보다 더한 슬픔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옛날에 쓰던 밀어서 여는 그 전화를 쓰고 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대학생인 딸도 카톡은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딸을 시대에 뒤떨어진 아이로 인식되게 하는 못난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딸을 고발한다. 뒤처진 아이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늦게 가는 아이라고.

한 일 년쯤 전이다. 딸이 교회서 아주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갑자기 멀리 이사를 하게 되었다. 퍽이나 서운해 했다. 그러면서 친구와 약속을 했단다. 둘이서 우체국을 통해 배달되는 편지를 쓰기로. 깜짝 놀랐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전화도 아니고 카톡도 아니고 문자메시지도 아닌 아니 최소한 인터넷 메일도 아닌 우체국을 통해 배달되는 편지라니?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놀라기도 했지만 지들도 '요즘 아이들'인데 한두 번 하다 그만두고 쉽고 빠른 연결책으로 바꾸겠지 생각했다.

불편하고 더디고 귀찮은 그 편지를 몇 번이나 할지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게도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그 아이들의 편지는 계속되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쁜 편지지를 찾아다니며 사서 모으고 고운 봉투를 준비해 두었다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편지를 쓰는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그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되면 얼마나 반갑고 고맙고 아름다울까. 후닥닥 타이핑해서 보내는 인터넷 메일이 아니다. 자다가 눈비비고 일어나 한줄 띄우는 문자메시지가 아니다. 인터넷 쇼핑을 하며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카톡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정성껏 편지지를 준비하고 예쁜 봉투를 사다놓고 편지지와 색깔이 어울리는 펜을 골라서 단정히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는 딸을 보면 정말 마음이 새롭다.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 번의 편지가 오가기 위해 빨라도 일주일은 족히 걸린다. 시험기간이라도 되어 바쁠 때는 한 달도 더 걸리는 시간을 기다리며 수시로 메일 박스를 열어보는 딸. 기다리던 편지가 없을 때의 허전함도 도착한 편지를 보고 뛸 듯 기뻐하는 그 마음도 모두 느껴보는 딸의 모습에서 참으로 많이 배운다. 기다리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그 마음이 좋아 보인다. 일 분 이내로 수많은 대화가 오가는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그것은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아련한 기대의 그 느낌을 알 수 없다. 그러기에 기다림 뒤에 오는 받았을 때의 그 환희도 알지 못한다.

빨리 가는 이 시대에 저리도 더디 가며 그 더딤을 즐기는 딸의 모습에 스피드 시대라 말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도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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