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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 일기] "아~ 알래스카, 그립다" 더위가 한국생활 최대 복병

"아~ 알래스카." 요즘 나는 입버릇처럼 시간만 나면 알래스카를 되뇌고 있다. 더위 때문이다. 20여년 만에 찾아왔다는 폭염이 한반도 남쪽을 뒤덮고 있는 지금 북극의 땅 알래스카 생각이 정말 간절하다.

특이 체질인지 젊었을 때부터 더위만 찾아오면 거의 기절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난해 10년 남짓한 미국 생활을 일단 정리하고 귀국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녹음기를 틀듯 반복해댔던 말이 생각난다. "더위만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는데 큰 문제나 걱정거리는 없다."

당시 귀국하는 내게 미국의 친구 친지들이 건넸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한국에서 어떻게 살려고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웬만하면 미국에 계속 남아 사는 방안을 찾아봐라"는 거였다. 또 다른 말은 "한국으로 돌아가니 참 부럽다. 나도 빨리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가고 싶다"는 얘기였다.

나는 한국이 좋거나 미국이 싫어서 지난 해 귀국한 게 아니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와 내년이면 100세인 할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에서 돌아온 것이다. 25년의 결혼생활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한 집에서 살지 못했던 아이 엄마와 같은 하늘 아래서 사는 것도 귀국에 따른 보너스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내게 지난 해 귀국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그 놈의 더위였다. 그것도 10년 가까이 산 캘리포니아와 같은 건조한 더위가 아니라 습도가 높은 한국의 더위 말이다. 캘리포니아처럼 건조하다면 기온이 화씨 100도까지 올라가도 무난히 견디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름처럼 습도가 높은 상황이라면 화씨 90도에도 그만 혼절 상태로 접어든다.

가까운 친구들이라면 다 아는 얘기지만 나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처럼 연중 습도가 높은 곳에 이민 가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무더위에 꼼짝 못한다.

서너해 전 당한 무릎 부상으로 두어 해 전부터는 겨울이면 긴 바지를 입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한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반바지를 입고 생활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어떤 할아버지는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는 눈초리로 나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며 혀를 차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름 한달 혹은 길면 두 달은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반쯤은 기절한 상태에서 보내곤 했던 기억이 생생했기에 지난해 가을 귀국하면서도 무더위 공포를 떨칠 수 없었다. 헌데 10년 남짓한 미국 생활을 끝낸 뒤 한국에서 처음 맞는 올 여름에 이렇게 가혹한 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정말 속된 말로 미쳐버리기 직전이다.

예전에 북미 대륙을 10개월 가량 여행하면서 딱 살고 싶다는 느낌이 오는 곳은 알래스카 몬태나 아이다호 같은 북쪽 지방이었다. 큰 아들로서 부모와 할머니를 곁에서 지켜야 하는 현실만 벗어날 수 있다면 정말 진지하게 다시 미국에서 살 궁리를 해보고 싶다. 아이 엄마를 비롯해 다른 식구들은 이 더위에도 그런대로 잠을 자는 편인데 나는 요즘 번번히 밤중에 잠을 깨고 있다. 목줄기로 땀이 흐르는데 잠을 계속 잘 도리가 없다. 내게 이런 체질을 물려준 어머니도 물론 나와 비슷한 형편이다.

70대 중반의 어머니는 평생을 이렇게 여름만 되면 더위에 말라 비틀어지는 식물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어머니처럼 살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어머니야 외국 생활은 꿈도 못 꾸는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이민 엄두를 못냈다지만 나는 이미 미국 맛을 본 처지이다.

그나마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쌓여 해가 조금 늦게 뜨고 일찍 지며 온갖 수목이 가득한 이스트 밸리여서 열대야는 아직까지 없는 게 유일한 위로라면 위로이다. 친미주의자도 아니면서 미국의 북쪽 땅들이 몹시 그리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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