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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두고 오래 사귄 벗…봉지

그 속엔 추억·비밀·마음 '담는 특별함' 있다

'담다'라는 동사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형상이 있는 물건을 담는다'라는 뜻과 '추상적인 의미를 담는다'이다. 그리고 어떤 것을 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상반된 개념이 되기도 한다. 항상 가까이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담아내는 쇼핑백. 우리의 일상을 담고, 문화를 담고, 정서를 담는다. 그 '담는 특별함'에 대한 의미를 나눠본다.

◆ 담아야할 것을 '담다' - 추억

지금처럼 세련된 쇼핑백이 없었던 시절엔 누런 봉지가 대세였다. 그 흔한 비닐 봉지도 없던 때라, 아침 일찍 가방 메고 툇마루를 나서면 어머니 손엔 양은 도시락이 든 누런 봉지가 들려있었다. 보리밥 위에 덮힌 고소한 계란 후라이 냄새가 날 때는 씨익 웃으며 받아들고, 그도 아닌 김치 냄새만 풀풀 날아오면 퉁명스럽게 받아들곤 투벅투벅 대문을 나섰다. 저음으로 버석거리는 누런 봉투 입을 바짝 쥐고 그렇게 아침이 시작됐었다.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시장에 가시는 어머니의 손엔 어김없이 네모난 플라스틱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오후 내내 동네를 뛰다니며 놀다 들어올 때면 어머니 손에 들린 장바구니가 무거울수록 아이들은 신이 났다. 저녁을 먹고나면 부족한 형편의 주름을 한 자락이라고 펴고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누런 봉투를 붙였다. 공책만한 크기의 종이를 편지봉투 모양으로 풀을 썩썩 발라가며 붙였다. 팔도 아프고 좀이 쑤신 아이들은 몸을 뒤틀며 빠져나갈 구멍만 찾지만, 말 없으신 어머니의 낮은 눈초리 하나로 투덜대며 봉지를 접었다. 느지막이 얼큰하게 취하신 아버지 인기척 소리에 모두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아버지 손에 들린 두어 개의 작고 누런 봉지들을 달뜬 얼굴로 받아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풀빵과 찹살떡 몇 알. 추운 겨울밤도 그렇게 누런 봉지엔 따끈한 추억이 담겼다.

◆원하는 것을 '담다' - 쇼핑

자신의 욕구를 당당히 담을 수 있는 시대엔 세련된 쇼핑백이 대세다. 피난갈 일도 없는데 카트 가득 넘치는 먹거리는 질기고 튼튼한 비닐 봉지에 담긴다. 작은 과자 하나도 몇 겹의 옷 속에 담겨있다. 백화점과 전문 매장을 나서는 손에 들린 쇼핑백은 그 자체도 패션이다. '카드'라는 비무장지대가 있기에 나중을 생각하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먼저 손에 담는다. 혹은 벼르고 별렀다가 스페셜 세일에 돌입할 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쇼핑백에 담는 기쁨은 작지 않다. 그리고 내 것보다는 남편과 아이들의 것을 먼저 사서 담는 즐거움은 주부들의 오랜 습관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벗에게 마음을 담뿍 담아 전하는 쇼핑백은 언제라도 애틋하다.

◆담지 못할 것을 '담다' - 비밀

한 때 한국에선 사과 상자가 대세인 시기가 있었다. 구린내가 나는 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쇼핑백에 담았다가 발각되자, 대체 쇼핑백으로 둔갑시켜 애궂은 사과 상자의 이미지만 실추시켰다. 지금 한국은 공천 뇌물 의혹으로 매우 시끄럽다. 3억원을 은색 쇼핑백에 담아 전달했다는 정황이 보도되고 있다.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을 담는 쇼핑백이 많을수록 사회는 혼탁하다. 쇼핑백은 봉지의 의무를 다할 때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

◆담고 싶은 의미를 '담다' - 마음

담고 싶지만 쉽게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직업에 몸을 담고 있지만, 날마다 과중한 일과 스트레스로 즐거움을 담기 어렵다. 사랑해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몸을 담았지만, 다른 생각의 부딪힘과 평행선을 달리는 감정들이 행복을 담지 못한다. 열 달을 몸에 담았고, 정성을 다하건만, 자식의 존재는 너그러움과 소망을 담기에 불안함이 늘 있다. 가까이 두고 서로의 마음을 담는 벗이라지만, 왕따와 개인주의는 지속적인 '친구'와의 관계를 담기 힘들다. 그러나 방황이 많아질수록 돌아옴의 본능도 강해지는 법이다. 마음을 담는 쇼핑백은 화려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담길 수 없다. 찬찬히 내면에 쉼표를 찍으며,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내로 갖고 싶은 물건을 담아내려는 기다림처럼, 보잘 것 없지만 따뜻했던 누런 봉지의 추억처럼, 넉넉한 '정'을 담아야만 함께 나눌 수 있다.

사랑으로부터 창조된 쇼핑백 이젠 현명함 담자
쇼핑백의 모든것


◆쇼핑백의 역사

포장은 인류 생활사에 있어서 지혜의 산물이다. 초기에는 식물의 줄기나 껍질을 이용하였고, 용기가 발달하면서 토기, 유리 등도 사용되었다. 포장은 여성의 손을 거치면서 더 섬세하게 발전하는데, 기원 전 3000년 이집트에서 화장 크림, 향료 등의 화장품 용기 사용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인류의 생활 속에서 경험과 지혜로 발달해 온 포장의 기술은 너무나 당연하고 손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산업적 가치로 여겨지지 못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대량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포장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제지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종이의 사용이 많아졌고, 상점에서는 대부분 폐신문이 가장 유용한 포장지였다. 현대에는 포장지와 쇼핑백 재질이 향상되고, 디자인이 발달하면서 문화생활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쇼핑백의 탄생

인간의 소비문화를 뒷받침해주는 정도로만 인식되는 쇼핑백은 흥미롭게도 '사랑'의 마음으로부터 창조되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살던 찰스 스틸웰은 가난한 어머니를 도우면서 자랐다. 어머니는 상점에서 무거운 짐을 날라야 했기 때문에 늘 힘겨워 했다. 그는 큰 가방에 물품을 가득 넣고 다니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가방의 무게 때문에 더 무거운 듯하여 찰스는 궁리를 거듭한 끝에 질긴 종이로 네모난 밑바닥을 만들고 맨 위에 튼튼한 손잡이를 달았다. 그러자 가볍고 튼튼한 종이가방이 만들어졌다. 그는 어머니를 위해 종이가방을 계속 만들었고, 특허출원도 했다. 1887년 그는 쇼핑백의 창안자로 영원히 기록되었고,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되었다.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쇼핑백의 탄생은 또 하나의 위대한 생활의 발견이었다.

◆'현명함'을 쇼핑백에 담아라

2005년도에 들어서면서 명품만을 고집하고 스타벅스 커피만을 마시는 사람들을 꼬집는 말로 '된장녀(남)'이란 신조어가 등장했었다. 그들의 쇼핑백은 허세를 담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간장녀'(남)이 등장했다. 이것은 자기 과시보다 실속을 중시하고 발품을 팔고 정보를 알뜰히 챙겨 소비를 남보다 현명하게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무조건 명품을 선호하는 '된장녀'를 겨냥해 개념있는 소비 문화의 확산을 일으키고 있다. '짠순이'의 개념과는 조금 구별되는, 불황 속에서도 외모를 가꾸고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합리적 쇼핑족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구매력은 증시에도 반영될 정도로 폭발적이다. LG경제연구원의 최경운 연구원은 "불황으로 실속형 소비패턴이 자리 잡았고, 요즘 젊은 층은 아끼면서 자신을 가꾸는 '칩시크(Cheap chic - 싸면서도 멋있다는 뜻)'를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간장녀(남)는 기본적으로 트랜디하고 스마트한 여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친다. 그들을 위해 세련되고 실속있는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적립식 카드와 쿠폰 등은 간장녀(남)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광고업체인 금강의 양혜정 국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기 불황으로 과시보다 실속 중심의 소비가 강해지면서 실속형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과 마케팅이 주목을 받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도 '간장녀'와 같은 유행어를 포함해 합리적인 소비습관을 권하는 광고가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쇼핑백에 담겨지는 물건이 개인의 의식을 반영하고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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