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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가작] 네가 있어 난 행복해

이옥순

"네 삶은 나의 에너지야! 네가 있어 난 진정으로 행복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울리는 말이다. 이역만리 떨어져 살아가는 우린 평소엔 주어진 삶에 열중하느라 침묵이 흐를 뿐이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이면 내가 바쁘고 내가 바쁜 시간엔 그녀가 바쁘다. 서로를 향한 그리움에 얹힐 즈음 노크를 하고 그간 모아 둔 삶을 쏟아 놓는다.

그녀가 일궈내는 삶은 한국에서 내 모습을 연상케 해 가슴뛰게 만들고 신선한 공기로 다가와 가라앉은 열정을 솟구치게 한다. 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그녀는 자신의 일에 지극정성이다. 십 수년 수업을 이끄는데 이골이 나 이제는 훤히 모든 것을 꿰뚫고 있음에도 끝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는 사랑 많고 부지런한 선생님이다.

여고 입학하던 날 그녀의 아버지와 내 선친께서 맺어준 인연이다. 그녀와 난 각자 다른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유학을 갔다. 3년동안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매일 만나 유학생이 겪는 외로움과 고충을 토로하며 정이 두터워졌다. 대학 졸업 후에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린 바늘과 실이 되어 푸른 꿈을 꾸며 젊은 날의 삶을 엮어나갔다.

결혼 이후 지방에서 살게 된 그녀와 난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어느날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약에 취한 모기처럼 맥빠진 목소리에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뭐라고? 다시 말해봐. 누가 죽어?" 어떻게 이럴수가 내 큰 아들과 같은 해 태어났던 세 살 먹은 딸이 외갓집에 갔다가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단다. 그 후 남편은 서서히 의욕을 잃더니 하던 일마저 내팽개쳐 버렸다. 이성을 잃은 남편은 하루하루를 게임으로 연명했다. 낮에는 방구석에 널부러져 잠에 취했고 밤이면 토끼눈을 하고 게임에 중독되어 어둠의 골짜기에서 허우적거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친구의 말에 눈앞이 노래졌다.

만사 제치고 남편과 함께 무작정 내려갔다. 마지막 불꽃마저 사그라져 가는 친구의 가정을 구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집안은 온통 어둠이 짙게 깔렸다. 기가 죽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두 아이들. 나이를 뒤로한 채 겉늙어 버린 친구의 얼굴엔 이미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친구의 남편! 그를 바라보니 가슴이 저릿해왔다. 순간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보고만 있었니? 너 현우씨 부인 맞니?" 눈물겨운 침묵으로 가슴을 썩이고 있는 친구에게 퍼부었다. 그동안 '강건너 불구경' 해 온 내 자신에 대한 화가 불똥이 되어 벼랑 끝에 서 있는 그녀에게 튀었던 것이다.

그 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희망을 불어넣었다. 궁리끝에 아이들에게 서울구경 시켜준다는 핑계삼아 그녀의 가족을 초대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그녀의 남편을 수렁에서 건져내는 것. 더불어 집안 가득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에 햇살이 비춰져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묻혀버린 사랑의 씨앗이 다시 돋게 하는 것이었다. 처지가 옹색한데다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인지라 조언도 조심스럽고 신중해야했다. 우리의 두손모음이 친구남편의 철옹성같았던 벽도 허물어내던 밤이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다.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삶의 길을 모색하다보니 하늘도 감동해 문을 열어주신 것이리라. 경험을 되살려 학생들을 지도해 보겠다고 하던 그. 진정으로 감사했다. 이것 저것 건네주는 자료들을 한 보따리 트렁크에 실었다.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희망과 꿈을 가득싣고 그녀 가족은 서울을 떠났다.

그녀의 남편은 서서히 웃음을 되찾고 방과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중학교에 상담교사로 취직까지 했다는 소식이었다. "네가 제안한 방법대로 금요일 밤마다 가족이 모여 조촐한 파티를 열었더니 그 효과가 아주 좋아." 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주일을 돌아보며 서로에게 칭찬을 건네고 격려해주며 다과를 곁들이는 '금요일 밤의 파티'야말로 가족을 끈끈하게 묶는 강한 접착제가 될테니 시도해보라고 일러주었던 것이다. 맞벌이를 하느라 늘 바빴던 내가 가족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소통하는 방법으로 채택해 울궈 먹었던 방법이다. "날 보면 소 닭보듯 하던 남편이 스킨십을 다 해오는구나! 이제야 행복이 뭔지를 알 것 같아."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렸다.

작년 여름엔 아들을 보내왔다. 어둠의 터널에서 가정이 휘청거릴때 허우적거리던 아들이 그만 자기성을 쌓아버렸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겐 관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은 관대하게 바라봐 주지 못했다.

흔쾌히 환영했다. 시차를 적응할 겨를도 없이 맹훈련에 들어갔다. 혹독한 무더위속 새로 태어나기 위한 40일 프로젝트! 이에 돌입했다. 이른 새벽 기상 나팔소리와 더불어 빡빡한 스케줄을 따라갔다. 밤마다 한 시간 걷기를 통해 인내의 터를 닦으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던 아이 꿈과 도전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이 늘 현실에 비판을 일삼고 덤벼들던 아이였다. 과체중이라 움직이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던 아이 그 아이의 가슴에 긍정의 바람이 일렁였다. 운동의 맛을 알게 되고 운동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프로젝트의 궤도를 타고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날 난 짊어진 숙제를 해야만 했다. 친구가 걸어온 불행했던 삶을 낱낱이 들려주는 것이다. 엄마 말에 무조건 반항하고 무섭게 덤벼들던 아이였기에 부모님의 삶을 이해시켜야만 했다.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아래 차를 세웠다. 단단히 마음먹고 이야기를 꺼냈다. 천지가 깜깜하고 어두웠던 시절 엄마의 굴곡진 삶을 듣고있던 두어시간!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눈물의 강둑이 와르르 무너졌다. 우박같은 눈물에 콧물까지 뒤범벅이 되었다. 그의 마음 속에 쌓인 퇴적물들이 살진 눈물을 타고 녹아 내렸다.

40여일의 맹훈련을 마치고 돌아가게 되던 날 파티를 열었다. "음 저도 커서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싶어요. 그럴려면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요." 웃음을 머금고 늙은 영감처럼 말하는 그. 늘 침묵 속에 갇혀있던 아이가 마음도 열어보이고 말 수도 제법 많아졌다. 공항에 마중 나온 엄마 손을 꼭 잡고 "이모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씩 웃어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단다.

새해 아침 축보가 날아왔다 "아 너무 행복해 이 행복이 깨질까봐 두려워. 지민이도 명문 과학고에 합격했어. 장학금까지 받고. 모두 네 덕분이야! 정말 감사해" 라는 쩌렁쩌렁한 그녀의 목소리! "네 기다림과 인내의 세월이 고통 속에서 진주를 만들어 낸거야. 상처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키울 수 있는거야. 내가 더 감사해." 순간 콧등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우린 취향도 삶의 패턴도 전혀 다르다. 그녀는 그녀답게 나는 나답게 각자의 위치에서 역동적인 삶을 엮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어' 하면 난 '아' 하고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는 하나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동시에 외치는 인삿말 "네가 있어 난 행복해."

수상소감
"중년 혼란 겪던 내게 새 길이 열렸어요"


생각지도 않았던 '신인문학상' 수상이라는 소식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중년 의자에 앉아 변화를 꿈꾸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제게 수상소식은 새 길을 내 주었고 물꼬를 터주었습니다. 시상식장으로 향하는 하늘길에서 전 새로 태어났습니다. 하늘길 하얀 구름밭에 지친 영혼을 뉘여놓고 세월속에 쌓인 퇴적물을 허공에 하염없이 뿌렸습니다. 세월이 얹어준 옹이도 겹겹이 쌓인 마음의 때도 박박 밀어내니 시원했습니다. 눈부신 물빛 하늘 아래 평온하기 이를데없는 흰 구름밭은 낯선 땅에서 좌충우돌했던 시절 가슴을 후벼팠던 생채기들을 삶에 대한 감사와 은혜로 바꿔 주었습니다. 살면서 적절한 시기마다 이만한 씻김굿을 만들어낼수 있다면 더욱 의연한 자세로 제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게 큰 상을 주셔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고달픈 이민사회 우리 동포들에게 한편의 글이 힘이 되고 희망이 되어 드릴 수 있도록 매진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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