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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나이 50에 가출 그 이유는…

지난 한 주는 가출 생활을 했다. 이곳 이스트 밸리의 내 집을 빠져 나와 대전의 동생네에서 대여섯 밤을 보냈다.

가출을 해보기는 이번이 생전 처음이다. 정서가 불안정한 사춘기 때도 가출을 시도한 적이 없다. 또 결혼을 한 뒤 아이 엄마와 제법 심하게 다툴 때도 집을 박차고 나오지는 않았다.

나이 50세가 넘어 처음 결행한 나의 이번 가출은 아버지와 갈등 누적이 원인이었다. 가출의 발단은 아주 사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 한마디였지만 사실 그 단초는 지난해 귀국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언젠가도 가볍게 지나치면서 얘기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와 나 이렇게 네 사람으로 이뤄진 우리 집은 좀 별난 구성의 '모자 가정'이다.

즉 할머니와 아버지 모자 어머니 나 모자 이렇게 두 쌍의 모자가 우리 가정의 구성원인데 이런 외면적인 가족 구성 형태보다 더욱 재미있다고나 할까 혹은 기막히다고 할 수 있는 점이 있다. 두 모자 쌍이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는 할머니를 무척 닮았고 나는 성별만 다를 뿐 어머니의 판박이라는 점이 가까운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꽤 먼 친척들에게까지 제법 알려졌을 정도이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격상 특징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세상에 대한 쉴새 없는 불만과 근심으로 요약된다. 아주 약간 과장하면 하루 온 종일 불만과 근심을 지니고 사는 분들이다. 이런 탓에 예컨대 즐거운 내용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도 화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불만과 걱정으로 흘러가고 만다.

지난 해 추석 전날 오랜 미국 생활에 일단 종지부를 찍고 귀국한 직후 아버지가 내게 지속적으로 한 말 가운데 하나는 농사 짓는 시골 생활이 지긋지긋하다는 거였다. 어머니와 나는 무척이나 시골 생활을 꿈꿔왔고 이스트 밸리에 둥지를 틀 게 된 것도 두 사람이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이뤄진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틈만 나면 이곳 이스트 밸리를 두고 "재수 없는 곳"이라든지 지긋지긋하다고 하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것은 내겐 고통 그 자체나 다름 없었다. 그렇잖아도 진짜 부자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나에서 열까지 다른 아버지와 나의 성질과 체질은 서로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

불편이 누적적으로 지속되던 차에 지난 주 나로서는 또 한 차례 견디기 힘든 아버지의 발언을 접해야 했다. 결론만 요약하면 자신이 "겨우 기초생활이나 하고 있다"는 거였다. 주어진 여건에서 힘닿는 데까지 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간 자신의 삶의 질이 밑바닥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세 명의 동생들도 나처럼 한결 같이 불효자들인지 이런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지만 삶의 질을 판단하는 건 주관적이기 때문에 기초 생활 수준이라는 아버지의 인식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스트 밸리로 들어오기 전 직장 생활이나 그 전의 군 복무 때 또 그전의 학창 시절에도 받은 적이 없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며 지난 해 귀국 이후 10개 월여를 버텨온 나로서는 아버지의 말 한 방에 그대로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문 기둥을 머리로 들이받을 만큼 화가 솟구쳤지만 간신히 억누르고 대충 옷가지를 챙겨 문을 박차고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모진 항암 투병을 마치고 몸을 추스르는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죄를 짓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내가 계속 있다가는 피가 거꾸로 돌아 쓰러지거나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 달리듯 집을 뛰쳐나와야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피로 맺어진 인연에서 비롯되는 엄중한 고통은 차라리 물 같은 인간 관계를 꿈꾸게 만든다. 존재란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무색 무취할 때가 최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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