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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진짜 농부'가 됐지만 영주권자라서 '외국인 농부'로 지내야

마침내 '공인' 농부가 됐다. 현재의 이스트 밸리에 농토를 마련한지 3년 6개월여만이다. 지난 주 면사무소에서 '농지 원부'를 건네 받았다. 농지 원부란 전업으로써 농사를 짓는 땅이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이다. 2008년 시골 생활을 계획하고 이스트 밸리의 현재 땅을 구입할 때 농지 원부를 갖길 희망했었다. 농지 원부는 1000평방미터 즉 대략 1만1000 스퀘어피트 정도의 농지를 소유 경작하고 있거나 임대해 농사 짓는 경우 만들 수 있다. 2008년 당시에 구입한 농지는 1000평방미터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는데 막상 농지 원부를 작성할 수 없었다. 땅의 일부는 내 명의였지만 다른 필지는 동생들이나 부모 이름으로 구입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농지 원부를 갖게 되면 즉 공인 농부가 되면 농업인으로서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운기나 풀 깎는 기계 같은 농기계의 동력원인 휘발유나 경유 등을 면세 가격으로 살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기름 값에 붙는 세금이 절반 안팎이므로 면세로 기름을 사면 사실상 반값에 기름을 구입할 수 있다. 2008년 땅을 살 때도 이 같은 사실을 대략 알고 있었지만 몇 조각 안 되는 밭을 내 이름과 다른 식구들 명의로 구입해야 했던 것은 당시 법률 때문이었다. 당시 법률은 땅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목적에서 전업농이 아닌 사람들의 토지 매입을 까다롭게 했고 이런 까닭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식구들 이름을 빌려 땅을 사야 했다.

재수가 없어 그랬는지 땅을 산 뒤 한 달도 못돼 이스트 밸리 지역은 해당 법률의 저촉을 받는 지역에서 해제됐다. 한 달만 더 기다렸다 샀어도 지금보다 훨씬 일찍 농지 원부를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 돈으로 샀고 내가 실제 경작자이지만 그 동안 명의가 다른 식구들 앞으로 돼 있어 농지 원부를 만들 수 없었는데 최근 이들 명의를 모두 내 앞으로 돌려놨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취득세와 등록세를 또 납부해야 했다. 그리고 명의 이전을 대행한 전문가에게 수수료를 줘야 했다. 시골 생활에서는 거금이라 할 수 있는 100만원이 넘는 생돈이 깨졌다.

땅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십분 이해하고 동감한다. 그러나 현재의 법률 아래서는 나 같이 진짜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 가운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해당 공무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얘기가 옆길로 새는 것 같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까다로운 농지 취득 규제를 고위 공직자 등은 어떻게 요리저리 잘 피해 투기에 성공하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행정부이건 사법부이건 고위 공직자 청문회를 지켜 보면 부동산 투기로 의심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후보자를 발견하기 어려운 게 한국의 현실 아닌가.

농지 원부를 어렵게 손에 넣었지만 나는 완벽한 '한국인' 농부 취급은 당분간 받지 못할 것 같다.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재외국민으로서 거소신고를 해놨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영주권을 받고 그 즉시 그 같은 사실을 한국 정부에 신고하는 바람에 주민등록이 말소됐고 대신 거소번호라는 걸 받게 됐는데 농업인 등록 때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은 전산시스템에서는 외국인으로 처리될 수 밖에 없다는 통보를 최근 농업인 등록을 담당하는 한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았다.

한국인 농부가 아니라 한국에서 농사짓는 외국인 농부 취급을 받는다 해서 기분 나쁘거나 억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는 사실이 아니어서 난감하다. 재외국민에게 최근 공직자 투표권이 주어지고 지난 4월 총선 때 국회의원을 뽑는데 한 표를 던지기도 했다. 게다가 평생 나는 외국 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는데 외국인 농부로 등록될 수 밖에 없다니 졸지에 거짓 신분을 갖게 된 셈이다. 현역 복무에 예비군까지 마치고 세금도 예외 없이 꼬박꼬박 내왔는데 외국 농부로 취급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재외국민에 대한 차별적 접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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