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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테네시 왈츠와 2불짜리 지폐

조사무

패티 페이지(Patti Page)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미롭다. 나는 그녀의 'Moon River'나 'Changing Partners'보다는 'Tennessee Waltz'를 더 좋아한다.

그녀의 테네시 왈츠를 듣고 있노라면 그 슬픈 사연에도 불구하고 잘 영근 사탕수수를 씹고 난 것처럼 달착지근한 뒷맛이 남는다.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의 테너색소폰 연주로 테네시 왈츠를 들으면 더더욱 좋다. 그가 색소폰을 부드럽게 애무하며 온몸으로 테네시 왈츠를 연주하면 노랫말이 봄 나비처럼 살아나 너울너울 춤추는 듯싶다.

23~24년 전 맨해튼의 재즈클럽에서 소니 롤린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고 반년 전에 예매했다던 연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서부터 날아갔었다. 우람한 덩치에 헐렁한 붉은 셔츠를 걸치고 짙은 수염이 유별나던 그의 색소폰연주곡 중에서 테네시 왈츠가 특히 인상에 남았다. 혼신의 힘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소니의 연주는 신기에 가까웠다.

오늘 피오 피코 도서관에서 열렸던 헌 책 판매 행사장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 하나의 재즈에세이'를 손에 넣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소니 롤린스의 페이지를 찾아 펼쳐보니 2불짜리 신권 석 장이 깨어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장하던 사람이 책갈피에 보관하다가 깜빡 잊은 채 기증했으리라.



시중에서 2불짜리 지폐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행운의 부적이라 믿어 웬만하면 사용하려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불짜리 지폐에는 미국의 제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의 초상이 들어있다.

제퍼슨 대통령이 1500만 달러를 들여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주를 사들이면서 대륙의 동서를 잇는 해상항로가 열리고 그로해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록 한반도의 절반정도에 지나지 않는 루이지애나이지만 그의 이 업적 하나만으로도 워싱턴 대통령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는다. 어쩌면 그로해서 2불짜리 지폐가 행운의 상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2불짜리 지폐 석 장이 의식의 갈피에 깊이 잠들었던 옛 기억을 깨운다. 맨해튼 연주현장에서 소니 롤린스의 테너색소폰연주를 함께 즐겼던 친구 이민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일로 해서 일 년에 서너 차례 만나 재즈클럽을 찾곤 하던 친구였는데 막상 내가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두절되었다. 소니 롤린스의 테네시 왈츠 연주를 들으며 희희낙락하던 그 자리가 이별의 장이 될 줄이야 어찌 짐작이라도 했었겠는가.

연락이 끊긴 지 어언 20년이 가깝다. 어느 날인가 가게에 도둑이 들어 상품을 몽땅 털렸노라 전화 한 통화 남기고 영영 잠적해버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처음 얼마동안은 문득문득 안부가 궁금했었지만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를 생각하면 맨해튼의 소호(Soho)거리도 떠오른다. 지금은 식당이나 기념품 또는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당시만 해도 크고 작은 화랑이 길거리에 즐비했었다. 그 번잡하고 생기 넘치던 갤러리 거리를 쏘다니며 좀 저렴하다싶은 그림이나 괜찮아 보이는 판화 몇 점을 사들고 파스타 식당 창가에 앉아 노닥거리던 시절 우리는 행복했었다.

소니 롤린스가 몇 년 전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연주했다는 테네시 왈츠 멜로디가 구성지게 울려 퍼진다. 오늘 에세이집 갈피에 실려 내 손에 들어온 2불짜리 신권 석 장은 소니 롤린스가 마음먹고 내게 띄워준 행운의 엽서일지도 모른다.

소위 롤린스 리듬(Rollins Rhythm)으로 잘 알려진 그의 호쾌하고 변화무쌍한 테너 색소폰이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그 때 그 친구 만나게 해주마'라며 속삭이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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