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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2주년 특별기획] "전투중 왼쪽 눈 실명"…참전용사에게 듣는다

포탄 비 속 치열한 전투

끊임없이 밀려드는 부상병



아군·적군의 처참한 시신

갈수록 잊혀져 안타까워

한민족 최대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지났다.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참전용사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본지는 6·25 62주년을 사흘 앞둔 22일, 플러싱에 있는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뉴욕지회 사무실에서 회원들을 만나 당시의 참상과 후세에 전하고 싶은 말을 들었다.

“죽지 않기 위해 동족을 죽여야 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지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18세 나이에 육군 1사단 전차공격대대 수색대 사병으로 참전한 강석희(80) 전 회장은 1년 후 서부전선에서 얼굴에 큰 부상을 입고 왼쪽 눈을 실명했다.

강 전 회장은 “임진강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하던 중 적이 던진 수류탄이 터지면서 얼굴을 크게 다쳤다"며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아군과 적군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전투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22세의 나이로 참전해 의무병으로 복무한 정승현(83) 부회장. 그는 “끊임 없이 몰려드는 부상자들로 인해 숨돌릴 시간조차 없었다”며 “대부분 내 또래 젊은이들이었다”고 말했다.

53년 휴전 직후 아군 전사자 시신을 찾기 위해 강원도 백암산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정 부회장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온전한 시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울가에서 발견된 한 시신은 복부에 총상을 입은 채 물을 마시다가 그대로 숨진 것 같았다. 처참함, 그 자체였다”고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황해도가 고향인 김순복(77)씨는 “당시 17살이었는데, 간호병으로 자원 입대해 오빠와 함께 싸웠다”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직도 황해도 고향에서 나와 오빠를 기다릴지도 모를 두 여동생이 무척 그리워진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들은 "세월이 갈수록 6·25의 참상이 잊혀서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전쟁은 언제 어디에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다. 가장 평화로울 때가 전쟁이 일어나기 가장 쉬운 때다. 경계심과 긴장을 늦추지 말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또 "미국에 있는 한인 2세와 3세들에게도 그들의 조국이 오늘날 성공한 나라가 되기까지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뉴욕지회는 23일 오전 11시30분 플러싱 대동연회장에서 ‘한국전 62주년 기념 한·미 참전용사 오찬회’를 연다.

서승재 기자 sjdreamer@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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