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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식 여행칼럼 '미국은 넓다'] 콜로라도 내셔널 모뉴먼트

젊은 청년의 순수한 한이 서려있는 곳

콜로라도 내셔널 모뉴먼트(Corolado National Monument)는 자연 경관도 아름답지만 그보다는 젊은 청년의 순수한 한이 마치 안개처럼 계곡속에 서려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잠깐동안 반짝 피었다가 열매하나 맺어보지 못한 슬픈 사연이 지금도 계곡속에 영원히 간직돼 있는 순애보다.

주인공은 바로 '조 오토'라는 젊은이다. 그는 1906년 홀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신기한 붉은 기암 괴석의 절벽과 계곡 그리고 까맣게 치솟은 첨탑들의 경관을 보고 난 뒤 어떻게 하든 이곳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존하겠다는 신념으로 연방정부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수도 없이 보내게 된다. 그 결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911년 5월 태프트 대통령에 의하여 2만여 에이커 넓이에 내셔널 모뉴먼트로 지정받기에 이르렀고 첫 관리인으로 존 오토가 임명된다.

그러나 존 오토의 피나는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공원 동문 입구부터 마을 사람과 함께 맨손으로 길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15년간 정부로부터 받은 급료는 매달 단돈 1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면서도 오직 자연을 지킨다는 사명감에서 불철주야로 공원관리를 해왔는데 어느날 동부에서 온 처녀 한명을 만나 그때부터 애환의 역사가 시작된다. 처녀 화가인 '비어트리스'도 계곡속의 웅장하고 장엄한 절경에 도취돼 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존 오토와 자주 만나게 되니 자연히 정이 들게 되어 마침내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실로 대단했다. 결혼한 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생명까지 내걸고 무려 450피트 높이나 되는 절벽같은 인디펜덴스 바위 위에 올라 성조기를 꽂고 내려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 부부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을 하면 추억을 만든다는 말과 같이 그녀는 잠시 추억만을 남겨두고 매정하게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생명까지 내놓을 정도로 절절히 사랑했던 존 오토의 실망과 실의 허무함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 곳을 찾을 때마다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런 그도 결국 1925년 공원 관리직을 그만두고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십년 정들었던 곳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된다. 그후 다시는 이곳에 돌아갈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고 73세의 나이로 여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지의 산 속에서 고생만 하던 그가 떠나던 1930년 미국에 불어 닥친 대공황으로 정부는 실업자 해소를 위해 후버댐을 비롯해 전국에 대대적인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평생동안 고생만 하다가 미완성으로 남긴 동문서 서문까지 23마일에 걸친 공사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20여 년 만인 1951년에 완전 개통된다.

존 오토는 사랑도 실패하고 길공사도 실패하는 불운의 사나이가 되고 말았다.

커브 길이 많아서 일명 '뱀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23마일의 시닉 드라이브는 운전을 하며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곳도 많다. 세군데의 터널을 비롯해 18군데의 전망대 등 붉은 기암 계곡 속으로는 등산로도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15번 북쪽으로 가다가 70번을 만나면 동쪽으로 바꿔서 아치스 공원이 있는 유타주를 지나 70마일 가면 콜로라도주의 그랜드 정션에 들어가면 동문과 서문으로 들어가는 표시가 나온다. 공원 안내는 (970) 858-3617

▶여행 등산 전문가 김평식 :(213) 736-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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