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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칙연산] 따뜻한 나눔 제니 박

나눔 더하니 '참된 가치' 찾았어요

유명 부촌인 '베벌리 힐스'에는 허름한 레스토랑 하나가 있다. 이 지역 터줏대감인 '페린스(Perrins)'는 23년간 제니 박(60)씨가 운영하고 있는 미국식 식당의 이름이다.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는 친근하기로 이름난 식당이다. 지난 10일 오후 늦게 박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영업이 끝난 페린스 식당을 찾았다.

"배고프죠? 우리 집에 오면 일단 무조건 먹어야 해요."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은 박씨는 우선 인터뷰는 뒤로 하고 서둘러 치킨테리야키를 만들었다. '음식'은 박 씨에게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음식으로 지난 5년간 LA지역 종려선교교회에서 정신 지체아 등을 돕고 있다. 허름한 '페린스' 식당에 따뜻한 온정이 묻어나는 이유다.

왜 남을 돕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가 정말 아프니까 그제서야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보이더라"고 했다.

박 씨의 작은 아들(헤럴드)은 8년전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다. 그전까지 아무런 걱정없이 살던 그녀에게 아들의 아픈 소식은 한순간 절망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세상에서 나쁜 짓 안하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꾸준히 식당을 운영하면서 돈도 부족하지 않게 벌고 별 걱정없이 살았죠. 하지만 갑자기 작은 아들의 아픔으로 인한 현실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더 나빠지지 않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데요. 이 아이가 아니였다면 돈을 따라 명품이나 쫓아 다니는 사람이 아마 저였을거에요."

박 씨의 아픔은 삶 에서 '허례허식'을 빼는 계기가 됐다. 대신 그로 인해 인생의 참된 가치를 볼 수 있는 시야를 얻었다.

미국에 와서 식당만 운영해 온 박씨는 아들이 병원에 입원 했을때 특별히 아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갔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아들'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두가 다 '내 자식' 같았다. 그때부터 주변 환자들을 위해서도 음식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머리(정신)가 아프다 보니까 가족들도 잘 안 찾아오더라구요.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음식을 만들어 줬더니 얼마나 웃으며 즐겁게 먹는지 몰라요.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너무나 즐거워졌어요."

그때까지 단지 비즈니스로 하던 음식이 진정 마음을 담은 '사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더 맛있게 더 즐겁게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은 박 씨의 인생에 사랑의 마음을 더했다.

"저에게 있는 가장 뛰어난 재주가 '요리'잖아요. 아무래도 일반 사람보다는 소질이 있겠죠. 내가 만든 음식이 돈을 버는 도구가 아니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가 만든 음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웃음을 준다는 사실이 제가 정말 행복해지는 이유에요."

박 씨가 LA지역 종려선교교회의 지체 장애아들을 도운지는 5년째가 되간다. 어느날 라디오에서 자신의 아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식 같은 마음이 들어 그 아이들에게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인연이 닿기 시작했다.

박 씨는 크리스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달 한번씩 불고기 만두 떡국 떡볶이 등을 만들어 종려선교교회를 방문해 보딩 케어 20여명의 정신 지체아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아세요? 사실 돕는 아이들은 20여명인데 음식은 40인분을 준비해야 돼요. 평소 그런 음식을 잘 먹지 못하니까 아이들이 한번 먹을때 정말 많이 먹거든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날은 새벽부터 나와서 만들죠.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아요. 아이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웃음을 찾으면 얼마나 즐거운데요."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설날 등은 박 씨에게 더욱 즐거운 날이다. 매달 한번씩의 방문 외에도 특별한 날이면 박 씨는 어김없이 음식을 만든다. 이제 60세가 된 박 씨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녀의 은퇴 계획은 '나눔'이다.

"제가 일을 하면 이제 얼마나 하겠어요. 저도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데 남들과 다른 노후를 살고 싶어요. 제가 나눠 보니까 그 행복의 맛을 알겠더라구요. 물론 그냥 돈으로 돕는건 쉽죠. 하지만 내가 직접 힘을 써서 돕는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잖아요. 그래서 음식을 통해 자원 봉사자 같은 일을 하고 싶어요."

박 씨의 꿈은 하나다.

그녀는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름이나 명예를 남기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누군가 '제니 박'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기를 원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인생이란게 정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내가 조금 더 벌려고 조금 더 가지려고 발버둥 치며 사는게 나중에 인생의 마지막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 인생에 갑자기 10만불이 주어지면 크게 달라질까요? 매일 만나는 사람이나 삶에서 잠시 거쳐가는 사람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게 정말 잘 사는 인생 같아요. 저를 아는 사람이 나중에 '제니 박'이란 사람이 어렴풋이 떠오를때 안좋은 기억보다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면 좋잖아요."

박씨의 이러한 소박한 바람은 그녀의 인생을 배로 가치있게 만들고 있다. 이는 그녀 역시 잊지 못할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몇년전 박 씨가 운영하는 '페린스' 식당이 문을 닫을 뻔한 위기가 있었다. 당시 건물주가 건물을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박 씨는 자신이 10년 넘게 데리고 일을 한 종업원(프란시스코 알만도)들의 생사가 걱정돼서 건물주를 찾아가 사정을 했다. 자신도 벌 만큼 벌어 그만두어도 상관이 없고 건물을 팔면 건물주도 이익금을 얻지만 "생업이 달린 종업원들을 생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90세가 넘은 건물주인 유태인 할아버지가 박 씨의 부탁을 듣고 한 말은 아직도 그녀의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남은 내 인생에서 돈을 더 모은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소".

박 씨가 23년간 작은 식당을 운영한 시간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온 '길'이었다. 그녀의 소박한 꿈은 그래서 더 따뜻하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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