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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처음 짓는 농사, 속도는 빠른데 정교함이 떨어져…

집 주변의 밭들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지고 있다.

마늘처럼 겨울을 난 작물들은 무릎 근처까지 올라올 정도로 컸다. 막 심은 깨들은 앙증맞은 떡잎을 흙 밖으로 내민 상태이다. 감자는 제법 무성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줄기며 이파리들이 쑥쑥 크고 있다.

지난해 9월 귀국했으니 올해가 자연의 품에 몸을 맡긴 사실상의 첫해이다. 주업이어야 할 농사짓는 솜씨가 엉성할 게 자명하다. 더구나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농사보다는 집 주변 정리에 진력해왔으므로 농사는 완전히 곁다리로 밀린 상태이다. 3500스퀘어피트 남짓한 마당과 주차장을 새롭게 조성하고 바닥 면적 70스퀘어 피트의 조립식 창고를 옮겨 설치하고 지금은 바닥 면적 250스퀘어 피트의 헛간을 짓기 위한 부지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사이 농사는 시간을 틈틈이 쪼개 하는 파트 타임 일이 돼 버려 번갯불에 콩 튀겨먹기 식으로 모든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50~60년씩 농사를 지어온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나의 농사 속도에만은 혀를 내두른다. "언제 또 깨는 다 심은겨." 할머니 한 분이 엊그제만 해도 잡초가 가득했던 밭이 하루 아침에 깨밭으로 변하자 감탄했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성인이 되고 난 뒤 처음 해보는 농사지만 사실 내가 생각해도 속도는 좀 있는 편이다. 땅이 특별히 단단하지만 않다면 3500스퀘어 정도의 밭은 반나절이면 쇠스랑으로 갈아 엎을 수 있다. 워낙 내가 막노동 체질인 탓이다. 또 반나절이면 두둑을 만들고 잘하면 씨앗 심기까지 끝낼 수도 있다. 조만간 경운기라도 한대 장만하면 밭 갈기 등은 광속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문제는 제법 손이 빠르기는 한데 정교함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고백하자면 이건 사실 농사 초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뭐든지 속도감 있게 밀어 붙이는 능력은 있는데 꼼꼼하게 처리하는 재주는 떨어진다. 한때 열심히 쳤던 골프만 해도 거리는 좀 나가는 편이었다. 아직도 채를 놓지 않은 테니스는 빠른 서브와 스트로크 강타로 좀 재미를 보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학창 시절 시험을 볼 때면 답안을 가장 먼저 작성해 제출하곤 했다. 초등학교 고사부터 입사시험 때까지 그랬다. 어디 그뿐인가. 밥 먹는 속도도 따라올 사람이 많지 않다.

뒤돌아보면 세상 만사에서 나는 항상 기술이 달리는 축이었다. 그런대로 파워도 있고 스피드도 있지만 매번 테크닉이랄까 정교함 같은 게 뒷받침되지 않았다. 마늘과 감자 깨만 해도 내가 심은 것들은 간격도 맞지 않고 횡으로도 삐뚤삐뚤 들쑥날쑥 엉망이다. 또 심는 깊이도 일정치 않아 씨감자라면 3인치 안팎 박는 게 적당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은 1인치 어떤 것은 5인치로 깊이도 제멋대로이다. 품앗이든 일당을 받든 남의 밭일을 이런 식으로 했더라면 가슴이 뜨끔할 일인데 일단 내 일이므로 마음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엉성하게 지은 농사가 작물들의 발육이나 최종적으로 수확량에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미칠지 모르겠다. 올해 첫 수확이 이뤄지는 초여름이면 엉터리 농사 솜씨의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대충 판가름이 날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 되든 속으로는 나름 위안을 삼는 구석이 없지 않다. 자연은 원래 '불규칙한 나름의 규칙'을 가졌다는 별 근거 없는 나만의 믿음이 바로 그 것이다.

사람의 손이 제아무리 정교해도 기계처럼 똑같이 뭘 찍어내거나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작물들이 삐뚤삐뚤하게 서 있으면 통풍이 잘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 일이라는 게 변수가 너무 많아서 사람 뜻대로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도시에서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정말 우스꽝스런 솜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싱그럽고 대체로 건강한 빛깔로 잘 자라주고 있는 밭의 작물들이 그저 고맙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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