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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쿠빌라이 황후의 근심

이원익/불사모 회장

동아시아 역사의 큰 줄거리는 농경 중심의 중국 한족과 북쪽의 흉노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등 유목민들이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 이야기다. 그 가운데서도 13세기 초 칭기즈칸과 함께 등장한 몽골의 기마부대는 마치 대평원의 토네이도처럼 감히 맞설 자가 없었다. 그 무시무시한 힘이 마침내 찬란하면서도 문약했던 송나라를 휩쓸었다. 남송의 저항세력은 아직 아홉 살 밖에 안 된 마지막 황제를 품에 안고서 남지나해의 거친 물결에 풍덩 뛰어들었다. 300년이 넘은 또 하나의 왕조가 처절하게 매듭지어지는 순간이었다.

원정군의 대장인 바얀은 이전의 송나라 황제였던 공종과 두 황후를 잡아 원나라의 서울인 대도로 데려갔다. 이에 쿠빌라이 칸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황후와 함께 이들을 환영하는 몽골식의 통 큰 잔치를 베풀었다. 잡혀온 이들로서는 감히 괴로운 내색도 하기 어려운 굴욕의 자리였다.

그런데 이긴 자의 한 축인 쿠빌라이의 황후가 잔치 내내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1000년을 이어온 왕조가 없었으므로 자신들의 자손도 언젠가는 이러한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몽골족의 원나라도 200년을 못 채우고 비참하게 쫓겨 갔다.(일본이 걸핏하면 2600년의 만세일계니 하지만 이야기의 상당기간이 신화적인 허구인데다 실제로 임금이 직접 나라를 다스린 동안도 얼마 되지를 않는다.)

이렇듯 이긴 자에게는 언젠가 지는 날이 오는 것이며 남을 쳐부수고 불태우고 죽인 자에게는 반드시 자신이 그렇게 당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빠르면 내 생애 중에 아니면 훗날 자신의 피붙이 후손들에게 오는데 이 고리를 끊으려면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해탈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반야심경이 일깨워 주듯 누구에게나 고정된 늘 그러한 자리는 없다. 내가 이룬 하찮은 결과물 내가 지금 차지하여 앉은 이 자리 지금 내 눈 앞에 벌어지는 저 일들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슬기요 공을 아는 반야지인 것이다.

따라서 머리가 아둔하여 지적인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우리는 상대편이 당하고 있는 처지를 생각하여 한 가닥 측은지심과 자비심을 품음이 마땅하다. 좀 어려운 말로 역지사지다. 발 딛고 선 자리를 서로 바꿔 상대편의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보고 다시금 고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상관과 부하 주인과 고용인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자와 여자 노장과 신진 토박이와 나그네… 이 모두가 하루에 잠깐씩만이라도 이처럼 생각하며 말을 하고 행동한다면 이 세상이 극락정토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살만 한 곳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된다는 말은 결국 우리 모두가 같은 몸 같은 운명이라는 얘기다. 여러 생을 거쳐 쌓여 온 인연에 따라 비록 같은 연회의 커다란 천막 속이지만 잠시 자리를 바꿔 다른 걸상에 걸터앉았을 뿐이다. 쿠빌라이의 아내는 남편의 위세에 업혀 교만을 떠는 대신 문득 이러한 불변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어찌 훗날이 근심 되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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