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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쓴소리'에 대한 고찰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지난주 커버스토리로 다룬 UCLA 옥성득 교수(한국기독교학)와의 인터뷰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쓴소리가 많았다. 1980년대 들어 한국 교회의 대형화는 개교회 중심 사상 기복.물질주의 기업형 교회 성속이원론 도덕적 타락 등 각종 폐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옥 교수는 "지금 한국 기독교는 30년이 넘은 썩은 고름이 터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했다. 신학이 아닌 학문적 관점을 통해 한국 기독교사를 연구하는 그가 대안으로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 회복'이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회복하는 신학과 목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진부한 대안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복음(복된 소식)'을 추구해야 할 공동체다. 이러한 방향성이 달라지면 교회는 변질된다.

복음을 전하려면 '죄'에 대한 언급은 필수다. 이 역시 누구에게나 불편한 쓴소리다. 인간의 죄성은 자꾸 죄를 드러내려는 빛에 본능적 거부감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의 언급은 죄책감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할 때 그 죄를 대속한 십자가의 예수가 비로소 구원에 대한 실제적 은혜가 된다는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교회는 무엇을 추구했는가. 부흥을 자연스레 숫자로 연결했다. 크기를 영향력과 동일시했다. 수치는 사역의 결과를 가늠하는 척도다. 헌신은 무의식속에 '자기 의(義)나 공로 쌓기' 암묵속에 세상의 현실적 복을 받는 통로로 사용됐다. 목회자가 세속적 의도를 갖고 사역하지 않았다고 해도 복음의 부재는 교회의 본질을 가린다.

숫자와 크기 등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는 지엽적인 것이다. 정말 복음이 우선인가 도구인가는 종이 한 장의 미세한 차이보다 얇다. 목회자든 교인이든 이를 매일 조율해야 한다. 그 미세함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방향성의 각도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복이다. 하지만 예수가 진정 전하고자 했던 복은 구원에 대한 '복음'이다. 한국 기독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 가운데 복음은 희망을 담은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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