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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 한국 기독교학 옥성득 교수…"한국 근대사, 기독교 빼고는 논할 수 없다"

UCLA에는 한국 기독교학이 개설돼 있다. 신학대학인 아닌 미국 내 일반 대학에서 한국기독교학이 개설된 것은 UCLA가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더 깊다. UCLA는 지난 2007년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로 옥성득 교수(사진)를 임명했다. 옥 교수는 UCLA를 한국 기독교사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고 한국 기독교학을 일반 한국학의 정식 분야로 수립하기 위해 미국 내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초기 한국 개신교 역사를 한국 종교사 동아시아 종교사 세계 기독교사라는 구도 속에서 비교하고 서구 기독교가 한국 종교 문화와 만났을 때 발생한 세계화와 한국화 과정을 연구했다. 현재 그는 지난 4월부터 독일의 루르 대학교(Ruhr Univ)에서 1년간 연구교수로 초빙돼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에 대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옥 교수는 각 나라에서 초빙된 50여 명의 교수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논문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3월 독일로 떠나기 전 옥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근대사는 기독교를 빼고는 절대 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한국 기독교 역사학자가 됐는가.

"1984년 때다. 당시 한국 개신교는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했다.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개신교는 급성장했고 대형 교회가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을 우려하는 지성인들이 많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교회가 유럽 교회처럼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비판적 목소리였다. 나 역시 이에 공감했다. 당시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한국 교회 개혁을 고민했었다."

-그렇다면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았나.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당시 시대적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기독교만은 성장을 낙관하며 세력 확장에 몰두했다. 기독교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선 과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역사 해석의 관점 확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

-계기가 있었나.

"그때 이만열(현 숙명여대 명예교수)교수를 도와 마이크로 필름에 담긴 아펜젤러 선교사의 일기와 편지 등을 번역하고 정리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필름을 읽을 수 있는 기계가 전국에 모두 3대가 있었는데 중앙일보 본사에 한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며칠간 판독기로 친필 일기와 편지를 읽으면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전 반봉건 근대화 운동의 열정 깊은 영성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격 등에 도전을 받았다."

- 당시 한국 개신교의 흐름은.

"당시 한국에서는 재벌 유형의 대형 교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듯 교회도 성장했다. 교회는 사람이 불어나자 '나눔'보다는 '확장'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분열이 많은 교회가 되었고 성속 이원론에 빠져 교회의 내적인 일에만 열중했다. 그 결과 '맘모스 교회'들이 등장했다."

-지금의 '메가처치(Mega Church)'를 말하나.

"'맘모스'란 말에는 곧 멸종할 것이라는 비판도 들어 있었다. 교회가 부흥하자 목회 지원자가 몰렸다. 무면허 신학교의 난립과 목회자의 과잉 공급은 지나친 경쟁 목회자의 자질 저하 도덕적 타락을 야기했다."

-성장에 따른 부작용은.

"기업형 교회는 '개교회 중심주의'를 낳았다. 이는 헌금 강조에서 보듯이 물질주의로 타락했다. 하나님보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다. 헌금의 동기에 기복 주의가 있었고 불투명하거나 불법적인 예산 집행과 부동산 투자 세상과 이웃보다 교회 유지와 확장을 위해서 더 많이 사용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의 위치는.

"많은 목회자들은 정교 분리의 이름으로 정치 참여를 반대하면서도 실제로 독재 정권을 지원한 부분이 많다.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개신 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잃어갔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30년이 넘은 썩은 고름들이 터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나.

"교회사가 보여 주듯이 교회가 권력과 돈을 가지면 타락한다. 일단 두 가지가 회복되어야 한다. 먼저 기독교의 정체성이다. 이건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세속적 또는 번영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십자가의 복음 섬김의 영성을 회복하는 신학과 목회가 돼야 한다. 또 하나는 기독교의 사회적 타당성과 신뢰성 회복이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는 약자를 돕는 자선 형태의 사회 봉사는 많이 했다. 반면 사회적 문제를 변혁하기 위한 성찰과 신학적 대안 모색 사회적 참여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나.

"예를 들면 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교육 문제 환경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기독교적 또는 성경적 관점을 모색하거나 제시하는 논의나 토론이 적다. 집단 이기적인 개교회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위한 섬김과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을 통한 신뢰성 회복에 집중할 때다."

-초기 한국 기독교는 어땠나.

"한국 기독교는 한국 기독교 다워야 한다. 미래의 한국 교회 방향을 모색하려면 일차적으로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현재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한국 개신교는 초기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확립된 것 같지만 이미 중국에서 뿌리를 내린 중국 기독교가 매개적 역할을 했다. 또 한국인의 주체적인 수용과 부흥 운동 토착화 노력을 통해서 한국적 영성을 지닌 복음주의적 기독교로 정착해 나갔다."

-기독교가 한국 근대화에 미친 영향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개신교가 교육과 의료 등 서양 근대 문명을 수용하는 주요 통로가 되었다. 또 기독교인은 항일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예컨대 한국 초대 교회 교인들은 전체 인구의 1%가 안 되던 때에도 기독교를 통해 근대 독립 국가를 형성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당시 한국 교회는 뜻있는 열혈 청년들이 많이 모였고 민족 앞에 소망을 주는 공동체였다."

-긍정적인 영향을 말하는 것인가.

"물론이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시민사회 운동에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은 컸다. 또한 60~70년대 토착화신학 민중신학 등 한국적 신학 모색에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한국적 신학 창출에 대한 노력은 줄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성경 번역도 부진하다. 현재 개신교는 몸집에 비해 영향력은 감소했다."

-기독교가 왜곡된 부분도 있지 않나.

"개신교는 우파적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최근 한국은 좌우의 대립이 더 심해지지 않았나. 개신교회는 보수 이미지 때문에 좌파로부터 무조건적인 비판을 받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 봉사 등 여러 가지 좋은 일을 많이 해도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되는 면도 있다. 또 일부 교계 인사의 정치 참여도 문제다. 이는 왜곡된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기독교를 대변하지도 못하는 소수의 인사가 잘못할 경우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을 우려가 있다."

-한국 기독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신학은 다른가.

"한국 기독교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직 한국사나 일반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신학적 언어가 아닌 일반 학문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학문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달리 말하면 객관성을 지닌 언어의 부재 일반학이 사용하는 이론(탈식민주의.탈근대주의.오리엔탈리즘)과 방법론의 비판적 수용 부재와 연관이 있다. 또한 '기독교사'라는 말의 의미는 기독교가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질문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 학문 연구의 중요성은.

"한국 유교나 한국 불교는 이미 미국 학계에서도 정식 학문이 됐고 연구자도 많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아직 일반 학문의 한 분야가 되지 못했고 학자도 별로 없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기독교사 연구는 필수적이다. 또한 후기 기독교 시대에 '세계 기독교' 속에서 차지하는 한국 기독교의 의미도 상당히 중요하다."

-미국에서 한국 기독교학이 갖는 의미는.

"미국에서 일반 대학으로는 UCLA가 처음으로 한국 기독교학을 개설했다. 지난 2007년 임동순 임미자 부부가 희사한 기금으로 한국기독교 석좌교수직이 마련됐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한국 기독교학을 미국 학계에 정식 분야로 정립하고 신진 학자를 지원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박사과정 학생도 선발할 예정이다."

-본인은 1세대 한국 기독교 역사 학자인가.

"나는 2세대라고 볼 수 있다. 이미 1세대인 이만열 민경배 교수 같은 분들이 한국 기독교 역사를 연구해 왔다. 나는 2세대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학을 일반 한국학의 정식 분야로 수립하고 이를 미국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하려고 한다. UCLA 한국기독교 프로그램을 한국 기독교사 연구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 여러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란다."

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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