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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업주부는 선택이 아닌 특권이다

조동호 / 퀸즈칼리지 교수.사회학

말이 말을 부르고 그 말이 또 다른 말을 부르는 게 정치판의 생리다. 하지만 그 많은 '옳은 말씀'들이 우리의 지혜를 깊게 하지는 못해 온 것 같다. 정치판이라는 게 으레 다 그렇고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식의 냉소주의야말로 그런 헛말을 번성케 하는 첩경이다. 그러니 사실을 꼼꼼히 챙겨보고 시시비비를 냉정하게 짚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조금씩이라도 제대로 가는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이른바 '엄마 전쟁(the Mommy Wars)'도 그렇다. 발단은 롬니 공화당 대통령 경선후보의 발언이었다. 대선 승리에 절대 필요한 여성표를 의식한 롬니 후보는 아내 앤 롬니 여사를 "여성과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본인보다 낫다"고 치켜세웠다. 그러자 민주당 쪽 참모인 힐러리 로젠이 "롬니의 아내는 평생에 단 하루도 일을 해본 적이 없으며 이 나라 대다수 여성들이 겪고 있는 경제문제를 실제로 다뤄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앤 롬니 여사는 이에 질세라 "아들 다섯을 키우는 일은 풀타임 직업이고 나는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며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의 선택권은 존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남편은 이 일이 자신의 밥벌이 일보다 중요하다고 했다"고도 했다. 로젠이 '서툴렀던 언어 선택'에 대해 사과하고 영부인 미셸 오바마까지 나서서 "나도 두 딸의 엄마지만 힘써 일하는 모든 어머니들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가령 애 키우기가 그렇게 소중한 일이라면 왜 남성들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주지 않느냐는 항변도 있고 전 같으면 '일' 축에 끼워주지도 않던 가사노동을 엄연한 일로 인정하고 더구나 그것이 '여자이니까' 가야 하는 숙명의 길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임을 보수진영에서도 내세우고 있으니 여권운동의 성과가 과연 대단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엄마 노릇의 고귀함을 말로만 인정하면 무엇하느냐 모성보호를 위한 사회차원의 제도가 미비하면 그런 인식도 입 발린 소리일 뿐이라는 질책도 있다. 다른 한편 일도 일 나름이지 제 수족을 움직여 하는 일 다르고 남을 부려서 하는 일 다르다는 딱히 기발할 것도 없는 버트런드 러셀경의 구분을 끌어와 롬니 후보 같은 억만장자댁 엄마 노릇이란 게 대부분 도우미들의 노동에 의존했지 않겠느냐는 푸념도 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엄마 노릇이 항상 시간과 정력이 달리는 힘든 일이며 가정과 사회를 위한 소중한 공헌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못한다. 또 여성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현실에서 대다수 여성은 가계 유지를 위해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과 가정을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일하는 엄마들은 전업주부에 비해 아이들에게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출산과 자녀양육 관련 휴가나 탁아 서비스가 미비한 상황에서 이런 선택 아닌 선택은 이른바 '수퍼 우먼'의 초인적 인내와 노력을 강요한다.

전업주부의 길을 속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은 드물다. 그런데 묘하게도 돈 걱정할 이유없는 전업주부의 노동은 숭고한 것으로 칭송을 받는다. 반면 남편의 저임금.실업 등의 이유로 복지혜택에 의존하고 있는 또 다른 전업주부들의 엄마 노릇은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엄마 노릇도 '있는 사람'이 해야 빛이 나는가. 선택이니 자유니 하는 말을 함부로 할 세상은 아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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