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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가치있는 여행

박유선 / 월간 '수필문학' 등단

그날 레돈도 바다는 짙은 해무에 휩싸여 있었다. 사실 난 그 바다에 갈 생각도 못한 채 여행 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젠 뜻밖에 추억의 바다가 되었다.

살다 보니 이제 감정을 어느 만큼 다스린다고 믿었건만 그도 아닌가 보다. 감정이라는 것이 살아 꿈틀대는 변화무쌍한 생명체 같은 것이라서 인가 싶다. 마음은 갑자기 멀리 LA 총각 아들이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소리치며 달려간다. "그래 가자. 가서 오롯이 둘이서 데이트를 하는 거야." 순간 눈치 없는 그이가 "같이 가자"고 나선다. 난 "아니라고 이번엔 아들과 둘이 오붓이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내가 가 있는 동안 일이 잘 풀리기를 떠나기 전 간절히 간구했다. 비록 난 가진 것도 힘도 없지만 그래도 아들과 무한한 사랑과 불굴의 정신을 나누리라.

사실 이제와서 말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경제대란의 여파를 우리집도 피하지 못해 아들 하나가 실직했다. 처음엔 잦은 출장의 피로가 쌓여 얼마간은 집에서 쉬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겠단다. 그런데 갈수록 경제한파는 요지부동이고 점점 더 어려운 소식만 들리니 차차 불안해지는 건 당연지사가 아닐까. 워낙 말수가 적고 조용한 아이인지라 전화 하기도 조심스럽고 묻기조차 어렵다.



이제나 저제나 좋은 소식 애타게 기다리며 마음으로 응원할 따름이다.

내 마음은 그랬는데 막상 가보니 아이는 나보다 여유 있는 것 같다. 쉬는 동안 평소 바빠서 하지 못했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청년부 교사로 주일과 금요일까지 봉사한다. 노숙자 자녀 과외수업뿐 아니라 교회 축제 초대와 일본타운에서 식사까지 알뜰히 챙긴다. 또한 노숙자들 식사 서비스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자칫 지루할 시간을 참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날도 나를 카페에 내려놓고 교회 일보러 갔다. 책을 보다가 아이와 간 레돈도 바다 산책로는 바다를 끼고 길게 뻗어있었다. 아들의 팔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눈높이를 좀 낮춰 직장을 찾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 순간 속 깊은 아들이 불쑥 "엄마 걱정 마세요. 지난 5개월간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던 회사에서 이제 결정이 났어요."

그랬구나. 참으로 떠나기 전 드렸던 소박한 기도가 떠오르며 엊그제 회사에 다녀오던 생각도 난다. 애도 참 그런 반가운 소식이라면 자다가라도 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너무 반갑고 감사하며 한 근심 놓았다.

"이제 지난번 보다 더 좋은 새 직장을 잡았으니 부디 잘 적응해 뿌리를 든든히 내려 잃어버린 시간까지도 충분히 보충해야겠지. 또한 좋은 믿음의 배필 만나 건강한 가정 이루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기를 기원한다."

아들은 쉬는 동안 마음 고생을 많이 했지 싶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더 성숙한 삶을 사는 지혜가 되리라. 바닷가에서 걷다가 무심히 머리결을 쓸어 올리니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어있다. 그래도 춥지 않고 기분이 상쾌하다.

지난 해에 가족 여행 다녀갔으니 이번에는 별로 다니고 싶지 않다. 동생네와 옛 친구와 나누는 담소의 시간 역시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나는 이번 여행중 흙과 화분 토마토 모종 몇 개와 선인장 화분도 샀다. 토마토 모종을 조카랑 같이 심어 아들 집에 두개를 주고 조카에게 두개를 줬다. 조카는 큰 재산이나 얻은 듯 얼마나 좋아하는지… 진작에 해줄걸 싶었다. 이제 집에 갔다 한국에 가서 손녀에게 또 토마토 모종을 심어줄 것이다. 누가 토마토를 제일 잘 키울지 인터넷으로 사진을 올려 시합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출장이 잦은 아들은 선인장을 좋아해 화분 두개는 사고 다른 두개는 이웃에서 얻어다 줬다. 주신 성의가 고마워서 나도 조금 나눠 가지고 왔다. 아들 역시 나처럼 화초를 너무 좋아한다.

코리아타운 피코도서관에서 8권의 책을 만났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등 단편집. 특히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글에서 힘을 입었다는 여러분들도 잘 아는 철도원의 저자 아사다 지로. 그는 명문가 태생에서 불량 소년 야쿠자를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거친 인생의 흔적이란 찾아 볼 길 없이 섬세하게 쓴 작품 남자가 썼다기엔 너무나 감성적 심미안적 표현의 '산다화' 등 단편집을 잘 읽었다. 아라이 만의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와 김훈의 '칼의 노래' 등 잠을 줄여 좋은 책을 봤다. 아들과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있는데 여동생은 꽃구경 가자며 "언니는 별장 같은 집에서 책볼 데 없어서 여기 왔어?" 해서 웃었다.

좋은 책은 언제나 나를 더없이 깊은 성찰의 세계로 인도해 고매한 정신을 간직하기에 일조를 하듯 이번 여행은 사랑과 불굴의 정신을 나눈 가치있는 좋은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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