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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손자의 자존심

유태경 / 현대문학 사조 수필 등단

자존심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넓게 보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남을 소중하게 여겨야 자기도 그런 대접을 받을 것이다. 마치 부메랑처럼 누구는 자존심이 세거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자존심이 있다.

어느 날 일곱 살 된 손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잘못했다고 사과해도 풀어지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다. 학원이 2시간 강의라 끝이 나기 30분 전에 갔다. 창틈으로 들여다보니 있어야 할 손자가 없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화를 내며 왜 교실에 안 들어갔느냐고 했다. 갔다고 한다. 거짓말까지 한다며 싫다는 아이를 교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나와서 한 시간 공부했고 지금은 다음 시간이란다. 두 시간 강의인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다. 끝이 나고도 30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렸다. 손자는 팔짱을 끼고 흥! 하며 돌아섰다. 나는 한동안 손자에게 죄인이 되어 무어라 사과를 해야 할지 생각하며 나 자신을 꾸짖었다.

"할아버지가 잘못했다." 안아 주려니 뿌리친다. 집에 오는 길에서도 몇 번을 집에 도착해서도 "할아버지가 미안하다" 별짓을 다 해도 풀리지 않고 피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튿날 아침이다. 다시 잘못했다고 했다. 그때야 풀렸는지 아니면 잊었는지 "That's ok" 한다. 살며시 안아 주었다. 별안간 서로의 처지가 바뀐다.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괜찮아요. 할아버지"라고 한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나한테도 자존심은 있으니까요"라고 손자가 나에게 하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래! '내가 손자 할 테니 네가 할아버지 해라!'라고 혼잣말로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상처는 받았겠지만 할아버지를 용서해 주어서 고맙고 기특했다. 다음부터는 손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그동안 얼마나 아내와 나는 손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는지? 학교에 다녀와 손 씻으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텔레비전 그만보고 밥 먹어라 숙제해라까지는 억지로 참았는데 잘 시간이 다 되었는데 게임을 하겠다며 컴퓨터를 켜면 드디어 큰 소리는 나게 된다.

우리가 먼저 행동과 말을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칭찬에 인색하고 기분에 따라 아이를 상대한다. 고치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손자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보기로 다짐했다. 잘못했을 때 큰 소리로 꾸짖기보다는 어린이라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친구라 생각하여 대화로 시작하자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그 말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을 터놓게 될 것이라고 자존심을 존중해 주며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을 아끼지 말자고 다짐했다.

누구는 자존심이 세고 누구는 자존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자존심이 있다. 특히 자연 속에 사는 동물들은 자존심을 목숨과 바꿀 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집 뒤뜰에는 몇 그루에 과일나무와 채소가 많다. 특히 수박이나 아보카도가 열리면 다람쥐와 싸운다. 다 큰 수박을 갉아 먹어 쫓아가면 도망가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뒤돌아보고 곳 달려들 것 같은 자세로 노려본다. 죽이고 싶기도 하여 총까지 구매했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죽일 수는 없어 지금은 공생공존한다.

다람쥐가 나무 위에 앉아 아보카도를 갉아 먹고 있다. 빗자루로 근처이긴 하지만 툭 쳤다. 깜짝 놀라 도망가는가 싶더니 다시 그 자리로 내려와 머리를 번쩍 들고 나를 노려본다. 다시 쳤다. 이번에는 한 발짝 더 가까이 내려와 곧 달려들 자세로 노려본다. 섬뜩했다. '자존심 상하게 식사하시는데 네가 뭔데 방해를 해'라고 하는 듯한 자세다.

그놈도 자존심은 있었다. 돌아서지 않고 나도 같이 노려보면서 뒷걸음질하여 그 순간을 피했다. 아내에게 설명했다. 절대 건들 생각 하지 말라고 그놈도 자존심이 있더라고 위험하니 손자한테도 가르쳐 주라고 했다.

살아가며 흔히 하는 대화 중 "자녀가 공부는 잘하느냐? 서울대학에 갔느냐? 결혼했느냐? 취직은 했느냐? "라고 묻는다면 자존심을 건드려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리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자존심이 있다. 말조심하며 생명과도 같은 자존심을 소중히 지켜주자. 그것이 바로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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