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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천광청의 '지하철도'

박용필/논설고문

기차가 떠날 시간이 벌써 30분이 지났는데…. 약속한 시간에 승객들이 나타나지 않자 차장은 초조한 나머지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10분만 더 더 더. 그 순간 짙은 어둠을 뚫고 들려온 '오! 수잔나' 나지막한 소리에 차장은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안내원의 뒤에 서너명의 승객들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열차 출발! 다음 정거장까지는 20마일이나 되니 서둘러야 합니다."

미국 교과서에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로 기록된 사건의 장면을 재구성해 본 것이다. 때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10여년 전. 1850년대 조지아 등 남부 여러 곳에서 벌어졌던 광경이다. 노예들을 몰래 탈출시키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가 바로 '지하철도'였다. 작전명이었다고 할까.

노예는 승객 이들을 데려온 사람은 가이드 안내원은 차장 은신처는 정거장으로 호칭했다. 운영 자금을 댄 북부의 돈많은 백인들은 주주라는 은어로 불렸다. '오! 수잔나'는 당시 유행했던 노래에 빗댄 접선 암호였다. 노예들을 태운 기차는 말이나 마차였다. 험악한 길을 뚫고 지나야할 경우는 두 다리가 기차를 대신했다. 현상금을 노린 노예사냥꾼들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어 탈출작전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하철도'가 어디에 깔려 있는지는 프로젝트의 윗선만 알 수 있는 극비사항이었다. 루트가 발각되면 승객과 차장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한 때문이다. 은신처인 정거장은 약 20마일 마다 허름한 농가건물에 설치됐다.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요기를 한 다음 또다른 차장에 인계돼 밤열차를 탔다. 들판을 달리고 개울을 건너고 산을 넘어 다음 접선장소로 이동했다.

승객들의 최종 목적지는 캐나다. 북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노예제도가 금지돼 있던 곳이다. '지하철도' 조직을 총괄한 인물은 해리엇 터브먼. 해방 노예 출신인 그는 기업인들과 특히 퀘이커 교도들의 도움을 받아 비밀 아지트인 정거장을 수백 곳에 구축할 수 있었다. '지하철도'는 백인들이 뒷돈을 대고 행동대원을 맡았다.

그렇게 해서 5만명이 넘는 노예들이 족쇄에서 풀려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남북전쟁이 터지자 북부군에 자원입대해 백인들과 함께 싸웠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헌법 전문에 실려있지만 평등은 어디까지나 백인들에게나 해당됐던 시절 얘기다.

요즘 주류언론에서 160년 전의 '지하철도'가 재조명되고 있어 화제다. 중국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의 드라마틱한 탈출 스토리 때문이다. 강철같은 의지와 목숨을 건 동지들 치밀한 기획과 어두운 밤. 중국판 '지하철도'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놀랍게도 천광청의 탈출은 현지에서 수천마일이나 떨어진 텍사스주 미들랜드에 본부를 둔 '차이나 에이드(China Aid)'가 총괄기획을 했다. 이 단체의 대표 밥 후 목사 역시 천안문 사태 때 미국으로 망명한 인사다.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은 경비가 삼엄해 진입이 어려웠지만 후 목사가 정치권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나 에이드'는 미국내 기독교인들과 인권단체들의 지원으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모아 중국에 지하 네트워크를 마련해 놨다.

이번 천광청 사건으로 중국의 민주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을 싸고 도는 중국의 체제 변화는 한반도 평화정착에 거의 절대적이다. 그 때가 되면 요덕의 정치범 수용소에도 '지하철도'가 깔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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