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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뿌리내린 나무와 작물을 옮겨 심은 후에는…죄책감이

지난해 11월말부터 올해 4월초까지 간헐적으로 나무와 작물을 심었다. 나무와 꽃은 어머니 아버지가 심어 놓은 걸 모두 옮겼는데 그 숫자가 족히 100그루 이상이었다. 작물은 대부분 새로 심은 걸로 지난 12월에 심은 마늘을 제외하고는 올 3월말과 4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손을 봤다. 그래 봐야 자른 감자를 약 300개 정도 박아 넣고 상추와 케일 씨앗을 한 움큼씩 뿌리고 겨우내 죽지 않은 부추와 파 쪽파 등을 좀 더 넓은데다 옮겨 심은 데 불과하다.

겨울에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돌을 구해 오고 집 앞에 1000스퀘어피트 남짓의 마당을 정비한답시고 쉬지 않고 막노동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작물과 나무는 손을 봤다.

꽃과 과일나무 작물을 심고 가꾸는데 들인 시간은 그간의 막노동 시간의 5%도 채 안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 쓰이기로 말하자면 작물과 나무 쪽이 막노동보다 10배는 족히 더 신경을 소모하게 했다. 막노동의 대부분은 흙과 돌 또 바위라고 말하기는 뭐한 기껏해야 100kg짜리 돌덩어리를 다루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무와 작물들은 모두 생명체여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과일 나무와 꽃 나무들은 마당을 정비하는 동안 잠정적으로 밭에다 옮겨 심었는데 한마디로 그게 나로서는 '사람 못할 짓'이었다. 너무 뻔한 사실이지만 식물들은 동물과 달리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사는 생명체가 아니다.

더구나 내가 LA에 머물렀던 지난 2년 남짓 사이에 집 주변에서 어른 키만큼 훌쩍 키가 커버린 나무들도 적지 않아 이들을 옮겨 심을 때는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복숭아며 자두 살구 배 매실 앵두 대추 등이 그들이었는데 이 것들은 이미 땅속 깊숙이 혹은 넓게 뿌리를 내린 상태였다. 굴삭기 같은 걸 동원하면 모를까 옮겨 심는데 뿌리에서 흙을 털어내지 않으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흙은 나무에게는 세상의 절반이나 다름 없다. 빛과 바람은 아마도 나머지 절반일 것이다. 헌데 나무 뿌리들이 꽉 움켜쥐고 있는 흙들을 털어내 그 것도 임시로 옮겨 심자니 나무들에게 아주 못된 짓을 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앞의 밭을 바라보면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삶을 부지하는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었다. 그게 매번 죄책감 같은 걸 불러 일으켰다.

나는 식물도 생명체로써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해타산을 해보자면 동물보다 식물 쪽이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주는지도 모른다. 특히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과일나무와 꽃나무들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더더욱 그렇다.

추운 겨울에 그리 옮겨 심어 놓으면 나무들이 살아 남을 것인지 어떨 것인지 확신도 없었다. 동네 어른들과 어머니 아버지는 매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잎사귀 하나 달고 있지 않은 옅은 고동색의 나뭇가지들을 보면 꼭 죽은 것만 같았다.

훌쩍 커버린 과일 나무만도 족히 30그루는 그렇게 옮겨 심어 놨으므로 속으로는 대규모 살생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지난 달 하순과 이달 초순에 걸쳐 마당 작업이 대략 끝나면서 이들을 정식으로 다시 옮겨 심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개운했는지 모른다. 나무들이 살든 죽든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발 이들이 살아있기를 빌었다.

그리고 지난 15일 기억력이 나쁘기 짝이 없지만 이날만은 앞으로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이날 아침 집 앞뒤를 둘러 보면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일제히 나무들이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었다. 지금도 앵두와 꽃 복숭아 자두 등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지만 아무튼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역사는 하룻밤에 이뤄진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밤 사이에 일이 난 것이었다. 서울에서 항암 치료 중인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좋아서 전화를 해댔다.

한편으로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신조랄 것까지는 없지만 한번 살다가는 인생 다른 생명체에 대해 피해는 최소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팽개친 적이 없다.

겨울철 두 번이나 터전을 옮겨 다녀야 했던 수난에도 불구하고 살아 꽃을 피워준 나무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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