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총성…폭동 현장은 전쟁터 방불"
LA 파견 샌타애나 경관들 '진압 공로상'
20년전 4·29 상황 한목소리 '생생 증언'
▶존 폴로(당시 SWAT팀 소속 수사관ㆍ은퇴)
- 폭동이 시작될 무렵 나는 아내와 함께 TV를 통해 그 장면들을 보고 있었다. 큰 일이 났다는 사실을 직감한 나는 본부로부터 전화가 올 것을 예감했으며 아니나 다를까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동료와 함께 크렌쇼 불러바드와 슬로슨 애비뉴 인근에 배치됐다. 당시 주변에는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 올랐고 상점 유리를 깨고 물건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마침 약탈 용의자를 잡아 현장에서 조사를 진행하던 중 어디선가 총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바로 10피트 옆에 총알 자국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우리가 여기서 활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짐 스나벨(현 커맨더)
“현장에 배치를 받았을 때 마치 전쟁터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온천지에 불이 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뛰어다니고 총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폭동 당시 나는 마약 수사대 사복 수사관으로 근무 중이었다. LA 파견 명령을 받고 동료와 크랜셔 불러바드 어딘가로 배치됐는데 완전 혼돈상태(chaos)였다. 순찰임무를 맡고 사람들을 진정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다. 여럿이 몰려다니면 사고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뭉쳐 다니지 못하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데이비드 발렌틴(현 샌타애나 교육구 경찰국장)
당시 새내기였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선배들과 함께 LA다운타운에 배치되었다. 임무는 소방관과 긴급복구 인력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폭도들이) 열쇠없이 가게 들어가(무단침입)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나의 임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돌과 물병을 던지고 야유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항상 방패와 보호장비를 착용했던 기억이 난다.
신승우 기자 gowest@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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