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4.29 폭동] 2.김봉환 LA시 주민국장
폭동전 두순자 사건 때문에…
'흑인들 한인쪽에 화살' 직감
그의 직감은 바로 1년 전 발생한 두순자 사건 때문이다. 사우스LA에서 리커를 운영하던 두씨는 1991년 3월 19일 물건을 훔쳐가던 흑인 소녀 나타샤 할린스와 몸싸움을 벌이다 총을 쏴 사망케 했다. 배심원은 유죄평결을 내리고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판사는 두씨에게 400시간의 사회 봉사명령과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흑인 커뮤니티의 반발을 샀다.
김 국장은 "판결이 내려진 후 사우스 LA지역의 한인 리커스토어를 대상으로 한 방화 범죄가 발생했고 한인 업주들을 노린 총격사건이 잇따랐다"며 "총격을 당한 한인 업주들이 1년에 30명에 달했다"고 당시 긴장감이 팽배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두씨에 이어 로드니 킹 사건도 무죄로 결론이 나자 흑인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그 화살은 한인 커뮤니티로 향했다. 주방위군이 출동하기 전까지인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사흘동안 폭동으로 방화와 약탈을 당한 비즈니스는 2000곳. 이중 3분의 1에 달하는 700여곳이 한인 업주 소유였다. 한인 업소들의 피해 금액도 4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KYC 직원들과 통역관 60명을 동원해 피해자를 돕는 일을 시작했다. 당시 KYC는 직원 6명에 연예산 30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청소년 상담 및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 운영이 주 업무였다.
김 국장은 "당시만 해도 커뮤니티에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는 1.5세들의 활동이 많지 않았다"며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일했을 것"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은 한인 피해자는 많지 않다.
김 국장은 "적십자 연방재난관리청(FEMA) 한국정부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피해 가정당 4~5만 달러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그쳤다"며 "한인업소들이 보험가입도 제대로 안 돼 있었고 세금보고 기록도 없어 정부 지원이 쉽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폭동이 가라앉은 후 올림픽에서 시작된 한인들의 평화 행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그는 다인종 연합회 국장직을 거쳐 2008년부터 한인으로는 처음 시정부 산하 주민국의 수장으로 임명돼 산하 90여개 주민의회를 관리하고 있다. 또 내년에 실시되는 시의회 선거에는 13지구 시의원직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타 아시안 커뮤니티에 비해 한인 커뮤니티에는 비영리재단이 많고 활동적이라 서로 힘을 합친다면 커뮤니티의 더 큰 성장을 일구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 그는 앞으로 10년 후 한인 커뮤니티의 모습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선거구 재조정 활동을 보면서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를 봤습니다. 여전히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은 부족하지만 커뮤니티가 함께 일하고 성장하는 시로 만드는 데 한인 커뮤니티가 리더 역할을 해낼 것을 믿습니다."
☞김봉환은…
뉴저지 출신으로 보스턴 칼리지와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부터 10년동안 한인 청소년회관(KYCC) 관장을 지내다 LA다운타운을 기반으로 한 다문화연합회 국장 패서디나 주택서비스 국장직을 거쳐 2008년부터 LA시 주민국 국장으로 임명돼 근무하고 있다.
장연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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