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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알아듣는 말이 좋은 말

이원익/불사모 회장

옛날 어느 선비가 산중에 있는 처가에 가서 자는데 밤중에 호랑이가 장인을 물어갔다. 여자들뿐인 집안이라 선비는 지붕에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 '원산대호가 근산래하야 오지장인을 착거남산하니 유총자는 지총래하고 유창자는 지창래하고 유봉자는 지봉래하소. 속래요! 속래요!'

알아듣겠는가? 이건 '문자 쓰기'를 넘어서 숫제 죽은 외국어 넋두리다. 아무리 다급하게 외쳐댔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저 선비가 흥이 나서 글을 읽는 줄로만 알고 아무도 오지 않으니 호랑이님만 느긋하게 장인어른을 식(?)하시고 말았다던가.

좀 꾸민 이야기 같지만 요즘도 이렇게 여러 사람 잡아먹는 '문자 사위'들이 드물지 않다. 쉬운 말 놔두고 배배 꼬거나 일부러 어려운 말만 골라 쓰는 이들이다. 여러 사람을 가르치고 섬기는 이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더러 있는데 그래야만 자신이 뭔가 남다르고 그럴 듯해 보인다는 착각에서다.

하지만 말이란 남이 알아들어야지 뜻이 전달되지 않는 말 조각은 알맹이 없는 헛소리거나 기껏해야 잠꼬대일 뿐이다. 만약 사람들을 향해 내뱉는다면 세상에 시끄러움과 어지러움을 보태는 일종의 공해가 된다.



그런데 종교에 있어서도 이러한 공해가 있다. 진리를 전달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말인데도 불구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난무한다. 하기야 일부러 얼버무리고 숨겨서 신비로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안 그래도 되는 부분마저 이런 전통에 찌들어 있으니 우리 한국 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젊은 층에게는 한국 불교에서 쓰는 말이 너무 어렵고 고리타분해 보이며 전달 방식도 좀 뒤떨어져 있어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불교가 옛날 부처님 시대부터 본래 그랬던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신 다음 이를 널리 전하셨는데 이때 주로 마가다 말을 쓰신 것 같다. 당시의 북인도는 언어적으로 이미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지만 대개가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에서 갈라져 나온 인도 유럽어 계통의 여러 언어를 쓰고 있었다. 부처님의 모국인 카필라 성이나 이웃의 큰 나라인 마가다의 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들은 중국말이나 한국말과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서쪽으로 그리스어나 라틴어 나아가 스페인어나 영어와는 몇 다리 거쳐 친척이 된다.

부처님은 마흔 다섯 해 동안 몸소 걸어 다니시며 법을 전하셨는데 가시는 곳마다 그 나라의 말 그 고장의 사투리를 아울러 쓰시면서 듣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법을 하셨다. 이에 어느 제자가 부처님께 건의하기를 이제부터는 부처님께서도 천박한 지방 말이 아니라 고상하고 거룩한 산스크리트로 설법을 하심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산스크리트는 브라만교의 제사장 계급이 쓰는 근엄한 고전어로 남아 마치 중세의 라틴어나 조선시대의 한문과 같은 것이었다.

이에 부처님은 이 제의를 물리치며 이르셨다. 나의 법은 중생이 쉽게 알아듣는 데 있다. 중생을 깨치게 하는 말 듣고 이해하여 진리에 다가가게 만드는 말이 거룩한 언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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