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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폭동20돌…'잠자던 호랑이' 깨어나 외치다

안유회 뉴스룸 코디네이터

'하나의 선거구' 운동 좌절은 두번째 정치적 각성 계기
2세들, '시스템 변화 운동' 시작

13일 뒤면 4.29폭동이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된다. 과속으로 달리던 흑인 로드니 킹을 체포하며 경찰봉 등으로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이 3명 무죄 1명 재심사 평결을 받자 분노한 흑인들은 시위를 나섰고 해가 지기 전에 폭동으로 번졌다. 사우스 센트럴과 한인타운의 한인 상점들은 고스란히 약탈과 방화를 당했다.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인들은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총격전까지 벌어야했다. 성문에 불이 나자 불을 끄려 연못의 물을 퍼가는 바람에 재앙을 당했다는 연못의 물고기. 한인들이 그랬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아메리칸 드림 공식은 폭동으로 깨졌다. 정치력 없는 번영은 언제 모래성처럼 무너질지 모른다. 한인들의 첫번째 정치적 각성은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찾아왔다.

그후 20년 동안 한인 커뮤니티의 현안은 언제나 정치력 신장이었다. 타인종과 교류하고 투표 운동을 벌이고 정치인 배출에 애썼다. 이만 하면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웠다는 자신감이 들 만도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폭동 20년 되는 해 한인들은 다시 정치적 패배를 경험한다. 최근래 한인 커뮤니 최대의 정치적 현안이었던 '하나의 선거구'가 무산됐다.

'하나의 선거구'는 그 자체로 지난 20년간 한인들의 정치적 각성과 역량의 축적도를 보여줬다. 4개의 선거구로 나뉜 코리아타운을 하나로 통합해 한 선거구에 편입시키자는 주장은 분명 '투표하자'는 운동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한인의 투표력을 한 곳에 집중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한 한 차원 높은 운동이었다.

이 중요한 운동이 하필이면 폭동 20년 되는 해에 실패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 과정은 꼭 절망스럽지 않았다. 지는 것도 때로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잘 져야 훗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는 과정에서 한인들은 좌절이 아닌 각성을 보여줬다. 주간지 'LA 위클리'는 지난 2월 1일 윌셔 이벨극장에서 열린 공청회에 모인 한인들을 '잠자던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기사에서 로이드 리 변호사는 "코리아타운의 정치적 각성 (현장)에 여러분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타인종의 눈에 선거구 문제를 계기로 한인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있다고 보인 것이다. 이 주간지는 "LA시 전역에서 선거구 재조정안을 놓고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으며 코리아타운은 그 진앙지"라고 표현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선거구 싸움에서 그저 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로이드 리 변호사는 공청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대표성 없이 그저 돈이나 건네주는 침묵하는 이들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나의 선거구' 운동을 해온 또 다른 2세는 이렇게 주장했다. "한인 1세들은 소송을 피한다. 어떤 문제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2세들은 앞으로 나와 말한다. 타협하지 않겠다고."

두 사람의 발언은 '하나의 선거구' 운동에서 두 가지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하나는 2세들이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 하나는 지금까지 말하기 꺼려했던 정치인의 선거자금 모금 방식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4.29폭동은 1세들에게 '하나의 선거구' 실패는 2세들의 정치적 각성 계기가 됐다. 정치적 좌절-각성-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흡사하다. 1세들이 폭동 뒤 '평화의 행진'으로 결집했듯 2세들은 공청회에서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하나의 선거구'는 실패했지만 한인 커뮤니티는 정치적으로 분명 성숙하고 있다. 4.29 폭동 20돌. 한인들은 다시 한 번 좌절을 딛고 일어나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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