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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학비 해결만 된다면" 아버지들의 '타는 목마름'

현장르포: 서류미비자 대학 입학 세미나 가보니…

그곳에 아버지들이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3시. 서류미비 학생들을 위한 대입세미나가 열린 민족학교에는 쉴 새 없이 참가자들이 몰려 들었다. 준비한 의자가 모자라 복도와 바닥 옆 사무실은 물론 문 밖에서까지 100여명이 까치발을 들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대부분은 부모 세대였다.

세미나를 진행한 민족학교 내 대학생 모임 아카시아(AKASIA.Alliance for Korean American Student in Action)측에게 전해들으니 "(학생들은 자신이 서류미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 하는데다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어려워 하기 때문"이란다.

참석한 부모들 가운데서도 절반 이상은 아버지들이었다. 대개 자녀 교육은 어머니의 몫으로 여겨지지만 학비에 대한 부담과 어떻게든 자녀의 앞 길을 막지만은 말아야 한다는 아버지들의 부담감이 그들의 발길을 이끈 듯 했다. 한 아버지의 고백이 그것을 증명했다.



"우리 애가 UCLA에 붙었어요. 기특하지. 그런데 기숙사에 안 들어가겠대. 1년에 1만5000 달러나 더 내야 하니까. 신분 때문에 운전도 못하는데 버스를 두세번씩 갈아타고 다니겠다네. 답답하지. 미안하고. 그 놈의 종이 한 장이 뭐라고…."

그는 막 둘째 아들의 대학 오픈하우스 행사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아들은 아직도 상황을 잘 몰라. 큰 애도 무척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는데…. 얼마나 날벼락이겠어. 부모 시키는대로 공부만 열심히 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꼭 필요한 걸 못 갖춰줬으니 말이야. 우리야 끝났지만 애들은 이제 시작이고 막 피어날 꽃인데…."

아버지의 책임감은 먼 길도 한달음에 달려오게 한 듯 보였다. 오렌지 카운티 밸리 심지어 랜초 쿠카몽가에서까지 온 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탄 채 참석한 아버지도 눈에 띄었다.

서류미비 학생들도 가주민이 내는 학비를 낼 수 있도록 해 주는 AB540 뿐 아니라 사립 학자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해주는 AB130 주정부 보조금인 캘그랜트를 신청하고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할 경우 부모의 수입에 따라 가주 거주자에 한해 등록비를 면제해 주는 AB131 등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목마른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설명하는 학생도 서류미비 "용기·희망 얻어 갑니다"

최근 발효된 이 법안들은 아버지들의 숨통을 옥죄었던 죄책감과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산소이자 빛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기자에게 "언론도 다 소용없다"며 "정보를 주는 데가 이리 없어 쓰겠냐"고 점잖게 꾸짖는 아버지도 있었다.

"다 겉돌더라고요. 이미 아는 내용도 대부분이고. 이런 데 쫓아다닐 부모들이면 언론에 나오는 뻔한 내용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고. 진짜 궁금한 걸 알려줘야지. 아니면 이런 세미나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도와주던가 말이야."

아버지들은 '실질적인' 정보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자식걱정이 먼저였지만 서류미비의 신분으로 위축돼 있는 것은 아버지 자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신청서에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쓰라는데, 그게 마음 같아야죠. 타주에서 편법으로 취득해 온 운전면허증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할지, 세금보고 제대로 못해 온 사람들은 소득 수준을 뭐라고 써야 할지, 우린 그런 게 궁금한데 누구 하나 속시원히 대답을 못해주네요."

그래도 2시간의 세미나 동안 아버지들은 적잖은 용기를 얻은 듯 했다.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는 생각에서였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보이고 있다 믿고 싶은 '드림법안'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한 아버지는 비좁은 공간, 부족한 시설에도 아랑곳 않고 앞에서 열과 성을 다해 학비 보조금 지원 방법에 설명하고 있는 아카시아 학생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카시아 소속 학생들도 대부분이 서류미비자라고 했다. 커뮤니티에서 서류미비 학생들을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왔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아버지도 보였다.

"이렇게 희망이 보이는데…. (아이들이) 직접 듣고 비슷한 처지의 선배들도 만났으면 좋았을 뻔 했잖아요. 어차피 결국 서류를 작성해야 할 것도 그 녀석이니까요."

그래서 인지 대학 4학년에 올라가는 아들과 함께 온 한 아버지의 모습은 오히려 편안해보였다. 둘은 신분이나 학비에 관한 문제에 대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아버지와 나란히 세미나장을 나서던 듬직한 아들이 말했다.

"처음엔 다른 친구들에게 신분에 대해 말하기도 꺼려지고, 학교에서도 장학금 신청이 어려워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아무도 저를 서류미비자의 신분으로만 판단하지 않아요. 어떤 길이든 분명 찾을 수 있다 믿습니다."

지나가다 그의 말을 들은 한 아버지가 슬그머니 세미나장으로 돌아가 아카시아 모임 공동 대표인 안젤라 김씨에게 물었다.

"저… 우리 애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아카시아에 들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서류 한 장과 학비 지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후, 아버지는 비슷한 처지 친구와 선배들에게 듣는 정보와 조언, 감정적 공감대와 리더십 형성 기회가 아이에게 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안젤라씨의 대답은 '예스'였다. 추가로 상담이 필요하며 몰려든 다른 아버지들에게도 일일이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작은 종이 쪽지 하나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은 채 돌아서는 아버지들의 얼굴에서 자녀에게 줄 귀한 선물을 얻었다는 흐뭇한 미소를 읽을 수 있었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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