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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내 스스로 하는 막노동의 묘한 쾌감에 마음의 평화가 충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략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헌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확신이 더해져 아예 이젠 믿음 비슷한 게 되었다. 반년 넘게 시골을 하고 난 지금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일상에서 하루하루 되씹을 정도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다. 공짜가 없다는 세상 원리가 돈이나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신과 육체가 서로 따로 노는 둘이 아닐 수도 있다. 지난 2월 중순부터 4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현재까지 약 한달 반 동안 거의 쉬지 않고 하루 평균 8~9시간씩 막노동을 해왔는데 이 시간은 한마디로 몸을 희생하고 마음으로 대가를 얻는 시기였다.

그간 쇠스랑을 2개 부러뜨리고 곡괭이 자루 하나를 교체해야 했으며 삽은 자루가 머리에서 덜렁덜렁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다. 나는 오른손 잡이인데 육안으로 봐도 왼손과는 차이가 날만큼 오른손이 부어있다. 그냥 부은 게 아니라 마디마디 손가락 인대들이 늘어나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을 안으로 오그려 주먹 모양을 만들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지난 한달 반은 내겐 대체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적당한 말을 찾기가 힘 드는데 마음의 평화라고나 할까 그런 것을 지난 50년 남짓한 인생에서 이렇게 장기간 동안 느껴본 적이 없다. 막노동 특히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막노동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들 한다. 지금 내 경우가 딱 그렇다. 문자 그대로 밥 먹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눈만 뜨면 또 숟가락만 놓으면 마당과 밭으로 달려가 삽질을 하고 곡괭이질을 하고 돌을 날라 쌓았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게 있다. 고통을 참고 달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이다. 사람마다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러너스 하이에 비견할 수 있는 '단순노동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살이에 나는 절대적인 행복이나 불행이 있다고 믿지 않는 편이다. 행복과 불행은 사람들이 대체로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현상 혹은 기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설령 전쟁이나 기아 같은 좋지 않은 일들이 있다 해도 그걸 내 마음이 불행으로 느껴줘야 불행한 것 아닐까. 태어나면 어김없이 죽고 그 사이에 온갖 일들이 발생하는 게 사람 눈으로 보면 세상의 본질일 게다. 그 온갖 일들은 하나도 똑 같은 게 없지만 한마디로 하면 '온갖 일'이라는 표현 하나로 뭉뚱그릴 수도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복잡다기한 것 같아도 그냥 한마디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달 반 남짓이 내게 더없이 평화로운 시간들이었다면 여기서 평화는 그러니까 마음의 요철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행복과 불행은 마치 산과 골짜기 같은 상대개념이기도 해서 행복의 산을 가파르게 올라갈수록 불행의 골짜기는 더 깊어 지게 돼 있다. 손목과 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나고 아킬레스 건이 굳어져 아침저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이를 고통으로 불행하게 느끼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 따르는 당연한 대가를 치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종류의 음식들을 일일이 구분하고 그 하나하나에 맛이 있네 없네 등의 평가를 내리기 시작하면 입맛이 좋고 없음에 따라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아마도 좋은 입맛을 느꼈을 때만큼 반찬 맛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식사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의 맛에서 마음을 내려 놓으면 먹는 시간들이 참으로 평안해진다. 삶 자체도 십중팔구는 그런 것일 게다. 내 경우 지난 달포의 막노동이 그걸 새삼 일깨워줬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얘기는 그러니까 삶은 한시도 인과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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