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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로토

절대로 로토 같은 것에 당첨되는 일이 없기를
K씨는 빌고 또 빌었다.

생각해보면, 요즘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이리저리 배배 꼬였다. 아파트 파킹랏에 주차를 하다가 옆 차를 긁어서 사백 달러를 물어준 것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며칠 전에는 골프를 치다가 벙커샷 볼이 같이 치던 처남의 뒤통수를 때려서 실신 시킨 적도 있었다. 숲속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던 처남을 자신의 볼이 어떻게 그토록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던지 아직도 불가사의했다.

처남은 미처 바지도 올리지 못한 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대자로 뻗어버렸다. 처남의 뒤통수에 터질 듯이 솟아오른 골프공만한 혹에 식은땀이 났다. 바지 지퍼에 걸려있는 처남의 물건은 번데기처럼 완전히 쪼그라져 있었다. K씨는 그 와중에 사람 몸도 풍선처럼 어느 한 곳이 튀어나오면 다른 쪽이 쪼그라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거기다가 사년동안 운영하던 델리숍도 근래 들어 매상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댈러스 다운타운 요지에 위치한 빌딩이었고 빌딩내 사람들을 마치 깔대기로 자신의 가게로 들이붓듯 붐비던 가게였다. 그런 가게가 두어 달 전부터 손님이 드문드문 하더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손님들이 자신의 가게를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새로 지은 빌딩에 들어선 후세인 같이 생긴 녀석이 운영하는 델리숍 때문인 것만 같지도 않았다. 손님들이 후세인네 델리숍을 가려고 부러 옆 빌딩까지 시간 낭비하며 찾아갈 리도 없을 테니까. 내가 손님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나, 아니면 우리 가게 음식들이 행여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빌딩 매니저 녀석이 무슨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닌지. K씨는 며칠 전 화장실에 다녀오다 만났던 빌딩 매니저 녀석의 거드름 피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심기에 열이 돋았다. 에이, 빨리 다른 좋은 비즈니스로 갈아타야지, 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점심시간에 팔다 남은 투나 샌드위치를 우적 씹다가 퍼뜩 스치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H mart 입구에서 가져온 중앙일보였다. ‘로토에 당첨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꾸었던 꿈은’이라는 기사였다. 당첨된 사람들 대다수가 꿈속에서 대통령을 만났거나 조상님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래 좋은 꿈들 많이 꾸고 로토에 당첨들 많이들 되라. 이렇게 생각 없이 기사를 읽다가 K씨는 두어 입 밖에 먹지 않은 투나 샌드위치를 바닥에 놓칠 뻔 했다.

어젯밤 꿈의 몇몇 장면은 아직도 생생했다. 처마가 하늘까지 치솟아 오른 고궁 같은 건물 앞에서 거적을 깔고 자신이 엎드려 있었다. 한동안 정적만 감싸더니 누가 행차를 한다며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왕이 신하들을 이끌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왕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형상이었다. 왕이 K씨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어루만져서 잠에서 깨었던 기억이 났다.

아니 이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로토 당첨자들이 꾸었다던 꿈의 종류를 나는 한꺼번에 전부 꾸었질 않은가. 조상님에다가 왕이면 대통령이 아닌가. 그야말로 대박 중에 대박의 꿈을 꾼 것이 아닌가. K씨는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출근하던 다운타운 입구 35번 고속도로 옆에 세워져있던 로토 광고판이 생각났다. 메가 밀리언 235밀리언 달러. 2억3천5백만 달러.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각만 할 뿐이다. 명언은 만고의 진리라 생각하며 K씨는 로토를 판매하는, 길 건너 세브론 주유소로 가서 퀵픽으로 20달러어치의 메가 밀리언을 구입했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K씨는 잠시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요즘 내가 즐겨보는 ‘해품달’ 사극드라마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은 아닐까. K씨는 그런 생각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고개를 너무 힘껏 흔들었던 탓인지, K씨는 한동안 모든 것을 잊고 지냈다. 집에서 가게로, 가게에서 집으로 열심히 일만했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냉장고에 음료수를 채우는 일상에서 가끔은 벗어나 골프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자신의 오빠 뒤통수가 완전히 다 낫기 전에 골프를 혼자 치러간다면 인간도 아니라는-와이프의 딴지에 번번이 골프백을 들었다 놓았다.

그날도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가기위해 길 건너 세브론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했다. 주유소 한쪽에 큼지막한 배너가 걸려 있었다. -2억3천5백만 달러 메가 밀리언 당첨을 축하합니다. 우리 업소에서 판매했습니다.- K씨는 그것을 보는 순간 심장이 백 미터쯤 밖으로 튀어나갔다가 다시 붙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당첨자가 나타나질 않는다는 주유소 직원의 말에는 처남처럼 거의 실신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날 샀던 로토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다. K씨는 그날 입었던 바지, 티셔츠, 몇 달 동안 입었던 옷을 전부 뒤졌다. 차 안, 집안 밖, 구석구석을 전부 뒤져도 행방이 묘연했다. 몇 주 전으로 모든 기억을 되돌려 보기도 했다. 기억은 그 시각으로 찾아가기도 전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온 집안을 두세 번쯤 완전히 뒤집어 까니까 와이프는 3천억 원 가까이 되는 돈을 하루아침에 도둑맞은 것처럼 굴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
에이, 내 복에 무슨 부자가...하면서 뒤돌아서는 와이프 뒤통수에 축구공만한 골프공을 날리고 싶었다. 베란다로 나가서 담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한인N교회를 바라보았다. 새벽녘인데도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했다. 새벽기도에 나온 모양이었다. 한심한 놈들, 나 같으면 그 시간에 잠을 더 자겠다, 라고 늘 비웃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을법한 평화와 안온함이 깊이가 오늘따라 느껴져서 K는 홀로 읊조렸다.

-로토 같은 것에 과거도 앞으로도 절대 당첨 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소서.

임영록 프로필

2000년 미주 중앙일보 신인 문학상 수상
2001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2004년 재외동포재단의 재외동포 소설 문학상 대상 수상
2005년 월간 문학과 창작 추천 등단
2007년 한국 소설 평론가협회의 미주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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