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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집 지면서 자꾸만 '인공 욕심' 생겨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주에 생겨난 편치 않은 마음이 좀체 삭지 않고 있다. 이스트 밸리에 정착한 뒤로 이런 기분 처음이다.

서너 달 전 어머니의 암이 확인됐을 때도 또 아버지가 연달아 대수술을 3차례나 받아야 하는 상황임을 파악했을 때도 마음이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거북한 마음은 자초했다. 일주일 전 굴삭기 2대와 다른 중장비를 불러 공사를 시작한 게 사단이었다.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인공적인 어떤 행위를 하거나 인공적인 물건을 사용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예를 들면 비닐이나 플라스틱 류의 물건들에 대해 일종의 선험적인 거부감을 나는 갖고 있다.



비슷한 원리로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곤란한 그 무언가를 굴삭기 같은 거대한 중장비를 동원해 해치우면 죄를 지은듯한 느낌이 생겨 난다.

집채만한 언덕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자동차 절반만한 바위를 이리저리 움직여놓고 길이가 수십 미터는 족히 되는 나무를 뿌리 채 뽑아내는 걸 목격하면 마음이 아주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이런 마음의 불편함은 2009년 여름 이스트 밸리에 현재의 집을 지을 당시의 느낌과 똑 같은 것이다. 당시 내 집을 짓는다는 기쁨에 하루 동안 1.5리터짜리 물병 15개 분량의 물을 들여 마실 정도로 죽을둥살둥 일했다.

하지만 내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즐거움이 빛이었다면 거기에 동원됐던 수많은 장비들과 화학 제품들을 사용하면서 생겨났던 불편한 마음은 그에 따르는 그림자였다.

입으로는 자연을 따르고 싶어 귀연한다고 연신 떠들어댔지만 반자연적인 행동을 일삼으면서 만들어진 모순이 마음을 편치 않게 한 거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모순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내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바로 욕심이다.

어떤 집보다 단열을 완벽하게 하겠다며 벽체 공사를 할 때 틈새만 보이면 화학제품인 에폭시 성분의 발포제를 내 손으로 여기 저기에 쏘아댔다. 그리고 나서 시멘트로 싹 발라 흔적을 지웠다. 또 튼튼하게 옹벽을 치겠다며 무른 땅에 깊숙이 철근을 박아댔다.

지난주 굴삭기를 동원한 공사 또한 따지고 보면 욕심에서 비롯됐다. 정원도 밭도 아닌 상태로 방치돼 있던 4000스퀘어피트 가량 되는 앞마당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언덕을 잘라내 옹벽을 치고 흙을 깎고 또 쌓아 올리고 한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내 스스로 암시를 하며 애써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 욕심이라는 게 언제 또 어느 형태로 발동될지 모른다.

연전에 뉴멕시코 주의 산타페에 머물렀을 때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어도비 건물을 본 적이 있다. 어도비 주택은 옛날 우리네 흙 집이 그랬듯 마치 땅바닥이 스스로 올라와 집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집이었다. 어도비 집은 몸은 좀 고생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안한 그런 집으로 보였다.

이스트 밸리에 들어온 뒤 과로해서 쓰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고된 육체 노동을 연속해 소화해냈다.

그 여파로 네댓 달 만에 체중이 10kg 이상 빠졌다.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몰골은 형편없게 됐지만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아이 엄마도 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도 이구동성으로 눈빛만은 맑아졌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거울에 얼굴을 비쳐보면 눈 흰자위가 꽤나 맑은 하얀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눈동자의 색이 다시 혼탁해지는 기분이다. 욕심이 일어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눈빛이 변하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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