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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취임 앞두고 만난 전 나성영락교회 림형천 목사

25년간 받은 미주교인 사랑 "난 행복한 목사"

1시간 동안 그는 '더불어'라는 단어를 14차례 썼다. 그에게는 더불어라는 말에서 '보람'과 '후회'가 교차하는 듯 했다.

지난 1월말로 나성영락교회에서 퇴임한 림형천(56) 전 담임목사와 만났다. 3월25일 한국의 잠실교회 담임목사로 공식 취임을 앞두고 본사를 찾은 자리였다. 퇴임 소감에 대해 그는 "커뮤니티와 더불어 사는 교회의 기틀은 마련했지만 정작 목회자로서는 교인들과 더불어 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교인들로부터 '남 돕느라 빚까지 진다'는 원망까지 들을 정도로 나눔을 실천했던 그로서는 의외의 소감이다. 갑작스러운 퇴임부터 나누는 교회 역할까지 진솔한 의견을 들었다.

-갑작스런 사임이다. 일부 교인들 때문에 실망해서 그만둔다는 소문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게도 갑작스러운 청빙 제의였다. 11월에 잠실교회에서 언질도 없었는데 청빙제안서를 보내왔다. 그동안 다른 교회서도 여러차례 청빙제의가 있었지만 재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3가지다. 난 한국의 4대째 목회자 집안 자손이다. 한국 교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이 항상 내게 있었다. 또 오십중반의 나이에 목회 마무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국 교계에 1성이라도 일조하고 싶었다. 지금이(한국에서 목회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부임할 잠실교회와 부친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보은 청빙'이라는 말도 있다.(잠실교회는 림 목사의 부친 림인식 목사의 노량진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던 원광기 목사가 개척했다.)

"청탁이나 보은 때문이라면 난 더 큰 교회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님은 철저하게 공사를 구별하시는 분이다. 또 나와 잠실교회 원광기 목사님은 개인적 친분이 없다. 지난해 10월 그 교회 집회에 강사로 초청받아 설교 한번 한 것 뿐이다. 나중에서야 청빙 심사였다는 것을 알았다. 전적으로 장로님들과 교인들의 결정이라고 들었다."

-영락교회 8년 목회 소감은.

"다양한 나눔 시스템을 마련해 '더불어 사는 교회'가 되기위해 노력했다. 자선단체를 돕는 비영리단체 YNOT 설립이나 지역주민들을 위한 나눔축제 소년원 도서관 건립이 그 결실들이다.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은 나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너무 퍼주려다 빚까지 졌다는 일부 교인들 의견도 있다.

"나눔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동참해주셨다. 처음 영락교회에 와보니 항상 500~600만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더라. 난 교회가 돈을 쌓아두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누는 것이 교회의 본질 아닌가. 지난 8년간 커뮤니티에 베푸는 만큼 교회 예산도 늘었고 교회를 찾는 교인 수도 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임하면서 교인들에게 2가지를 약속했다. 정치 안하고 싸우지 않겠다 했다. 약속을 지키긴 했지만 그러느라 교인들과 개인적인 관계가 부족했다."

-왜 교인들과 만나지 못했나.

"구역이 250개가 넘는 대형교회의 특성 때문이다. 특정 교구나 교인들하고 친해지면 다른 교인들이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또 심방을 해도 그 순서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교인들과 함께 아파하고 같이 웃어주고 싶었는데 어려웠다. 그래서 부임 후 3년간은 내가 '설교 기계'인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교인 개개인의 고민을 모르는 데 설교만 했으니…."

-해결책은 찾았나.

"꾀를 하나 냈다. 1:1 소통을 위해서 새신자들과 만났다. 한달에 한번 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행복했다. 손 잡고 기도하고 얼굴을 익히고 교제할 수 있어 기뻤다."

-이민 목회를 시작한 계기는.

"유학중이던 91년에 우연히 롱아일랜드의 한 교회를 방문하게됐다. 상처받은 교인 10여명이 모인 작은 교회였다. 교인들의 첫 인사가 내 가슴을 때렸다. '우린 그동안 목사의 지팡이로 보호받은 게 아니라 목자의 몽둥이에 맞고 살았습니다'하더라.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만에 내가 이 교회를 보듬어야 하는구나 가슴으로 알게됐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소회를 말한다면.

"미국에서 25년간 2개 교회를 섬겼다. 롱아일랜드 '아름다운 교회'를 개척해 12년간 담임을 맡았고 두번째 나성영락교회로 부임했다. 두 교회 모두 다툼 없이 화목한 교회로 성장했다. 교인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크다. 난 행복한 목사다."

-대형 한인교회의 역할은.

"대형교회는 엄밀히 말해 특수 교회이지 보편적인 교회는 아니다. 크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시시콜콜 교인의 고민을 알기 어렵다. 크기에만 신경쓰는 것은 교회의 표준 모델이 아니다. 교회의 성장은 예배당의 크기가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사랑의 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후임자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교인들이 적임자를 모시리라고 믿는다. 개인적인 바람은 대형교회중 한 교회가 아니라 교계의 어머니로서 커뮤니티를 이끄는 역할을 하셨으면 좋겠다."

-나성영락교회 교인들에게 작별인사를 해달라.

"큰 사랑을 받았다. 나도 열심히 사랑했다. 부족한 사람 이끌어주셔서 감사하다. 한마음으로 가정 같은 교회를 이루시고 더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시길 바란다."

림형천 목사 약력

▷1955년 부산 출생


▷림인식 목사의 5남매중 차남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74학번), 장로회신학대학원, 프린스턴대학 설교학 석사, 보스턴 대학 박사과정

▷뉴욕 롱아일랜드 아름다운교회 개척(1991년), 나성영락교회 담임(2003~2012), 서울 가락동 잠실교회 부임 예정

▷아내 림옥인, 1남1녀

글: 정구현 기자

사진: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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