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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밤비 오던날

박계용 / 한국 수필 등단

깊은 밤 자분자분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사위는 짙은 어둠 속에 잠기고 바람도 그쳤다. 새들은 어디서 이 밤을 지낼까? 어느 나뭇가지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지 잠시 생각이 스친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보금자리에 지금쯤 잠이 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빈방을 들여다 본다. 여행준비에 새벽출근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위해 방문을 열어둔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홀로 있는 시간 온갖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만나고 싶은 설렘이 가득하다. 잠심에 잠길 수 있는 고요 속에 밤비소리는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축복이다. 길게 기적소리가 울린다. 발밑에 출렁이던 하얀 물거품 모래와 자갈이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차창 어느덧 샌타바버러 바닷가를 달리는 열차의 창가에 앉아 있다. 침묵 안에 나를 두고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자 먼 곳으로의 여행….

갑자기 강아지들이 짖어대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빗소리에 섞여 철문을 흔들어 대는 기척에 순간 무서움이 왈칵 밀려든다.

탁 탁! 탁 탁 탁 탁 이게 무슨 소리지? 둔탁하지만 마음 속에 여지없이 떨어지는 저 소리의 근원은 무엇일까? 살며시 커튼을 젖히고 앞마당을 내려다 본다.



혹시나 밖에 놓아 둔 물그릇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인가 싶어 그 소리도 아니다. 생각해 보니 지난 번 비오던 밤에도 이 소리가 날 힘들게 했다. 그래 맞아! 옆집 월남댁 짓이란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마당에는 먼지 들어온다고 커다란 회색 천막을 쳐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빗자루로 싹싹 쓸어대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천막 펄럭이는 소리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어쩌랴 제 집에 쳐 놓은 것을…. 물통에 어지간히 물이 차오르면 조용해지겠지 이런 저런 일에 공연히 시끄러운 내 마음도 그러리라고 묵상을 하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열하일기'를 펴들고 연암 할아버지를 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압록강을 도강한다. 밤 두시 세시 딱 딱!끊임없이 들리는 그 소리는 그칠 기미가 없다. 모래알이 구르는 듯 아파오는 두 눈을 감는다. 타다닥닥! 신경 줄이 팽팽히 당겨진다. 잠잠했던 마음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이층 방에서 들리는 바깥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리기에 아예 아래층 거실로 내려온다.

벽에 붙어있던 화선지 한쪽이 떨어져 나풀거린다. 하얀 여백에 나지막한 산죽 무리 가녀린 댓잎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죽(風竹)이다. 작은 벼루에 천천히 먹을 간다. 묵향이 서서히 피어오른다.

아련히 떠오르는 그리움 사랑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물방울을 방울방울 손바닥에 떨어트리며 놀고 있었다. 먹을 갈다 싫증나면 분홍 살구꽃이 그려진 연적에 담긴 물방울이 친구 되었던 어린 시절.

그래 수선스런 마음을 잠재우자 흔들리는 마음 떨리는 손으로 먹을 듬뿍 묻혀 난을 친다. 고개 숙인 겸손한 난 한 송이 낮은 자가 되라고 자꾸만 한 송이 두 송이 점점 연하게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내 마음도 순해지고 있다. 있으라 한 자리에 묵묵히 침묵의 세월을 고스란히 살아내는 바위를 닮고자 듬직한 바위도 그려 넣는다. 어설픈 그림에 낙관을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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