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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범과 총격전 끝에 한인 여아 구출 가장 기억남아"

'30년 경찰인생' 마치는 한상진 수사관
"경찰이라 못했던 일 한인 위해 봉사 원해"

30년.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이다.

30년 6개월. 한상진 수사관(59.사진)이 LA경찰국(LAPD)에서 수사관으로 일한 기간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그 세월동안 LAPD 경찰국장이 다섯 번 바뀌었다.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돼 각종 서류의 기록과 보관 범죄의 추적이 쉬워졌다.

개인 한상진은 그 세월동안 수사관이었다. 1981년 9월 8일. 폴리스아카데미에 들어갔다. 2012년 2월 20일. 수사관 생활에 쉼표를 찍는다.

30년을 지나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가 납치다. 시작한 지 3년이나 됐을까. 2살짜리 한인 여자아이가 납치됐다. 유괴범은 아이의 몸값을 요구했다. 아이의 삼촌으로 가장해 직접 유괴범을 만나기로 했다. 추격전 끝에 유괴범은 사살됐다. 납치된 여자아이는 유괴범의 아파트에서 무사히 구했다.

85년 LA한인타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고리대금과 관련된 살인이었다. 한국으로 도주한 범인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까지 날아갔다. 자비로. LAPD는 비용문제로 한국에 보내주지 않았다. 한국 검찰에 관련 서류를 넘겼고 수사에 협조했다. 범인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87년 한인 갱단과 한국 조직폭력단이 연계된 세력의 원한을 샀다. 한 수사관을 죽이겠다고 난리였다. 이들은 한 수사관이 일식당 동경암에서 식사 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람을 보냈다.

같이 있던 사람이 한 수사관인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총을 쏘고 달아났다. 이른바 동경암 사건. 죽을 뻔했다. 다른 이가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수사가 본격 착수됐다. 이들은 와해됐다.

한 수사관에게는 본인의 수사 서류보다 내사 서류가 많았다. 경찰 선배와 후배의 음해와 투서 때문이다. LA한인타운에서 일하며 한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한인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로부터 괜한 오해를 샀다. LAPD는 동료들은 한인 커뮤니티는 한 수사관을 색안경을 끼고 봤다. 갱이나 조폭들이 한 수사관을 아저씨 또는 형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고 조직폭력배 두목이라고도 했다.

이같은 투서에 한번은 징계위원회에 회부가 됐다. 파면 위기였다. 하지만 경고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기여한 공적 덕이었다.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구나. 이렇게 위기에서 나를 살리는구나. 그 보람으로 30년을 넘게 달려왔다.

이제 은퇴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은퇴 경찰로 한 달에 두 번 올림픽 경찰서에 출근한다. 자원봉사다. 올림픽 경찰서에서는 신고 창구에서 일할 생각이다. 영어가 서툰 한인들을 돕기 위해서다.

다른 계획도 있다. 그동안 경찰이어서 대놓고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인들이 영어를 하지 못해 법을 몰라 절차를 몰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경찰이어서 나설 수가 없었다. 30년동안 생각했다. 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소비자 권리를 찾기 위해 일할 생각이다.

한 수사관은 은퇴하지만 펄펄 하다. 앞으로의 계획으로 마음이 바쁘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야 말로 '정의 해결사'로 일하려 한다. 그래서 그의 은퇴는 쉼표이지 마침표는 아니다. 또다른 수사가 시작될 뿐이다.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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