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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임진년 첫비 내리는 날

조사무 / '한국수필' 등단

올해는 60년 만에 한 번 돌아온다는 검은 용의 해 임진년이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영웅은 난세에 몸을 일으키고 용은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미친 듯 광풍이 일어야 승천한다고 한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고 싶은 것이 만물의 소망인가 미꾸라지도 천년을 인고하면 용이 될 수 있다지만 천년이 아니라 만년이 흐른들 어찌 가능할까마는 한갓 무지렁이도 용으로 승천하고픈 바람을 안고 산다.

이승의 가난이 곧 저승의 지복(至福)이라는 히말라야 산발치 나라 동냥여인의 신념과도 한 치 다를 바 없다. 소망이든 신념이든 그것이 꿈이라면 헛꿈일 수도 있고 희망이라면 허망일 수도 있을 터 그렇다고 누가 있어 이를 덧없는 짓이라 탓할 수 있으랴.

미꾸라지가 제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용은커녕 이무기도 될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미꾸라지로 승천하여 천상에서 용으로 환생한 누이가 있다. 어릴 적 함께 오순도순 살던 황해도 산간마을 초가집 네 채가 드문드문 작은 마을을 이루고 그중에 산비탈 초가집 한 채가 우리 집이었다.

한여름 비가 내리면 심심찮게 지붕에서 새끼손가락만한 미꾸라지가 낙숫물을 타고 몇 마리씩 처마 밑으로 떨어져 곰지락대곤 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달리 마땅한 놀이가 없었던 시절 우리 오누이는 미꾸라지를 잡아 보시기에 넣어 놀았다.

그때마다 누이동생은 노래 부르듯 "오빠 왜 미꾸라지가 지붕에서 떨어지는 거야?"라 묻고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곤 했었다. 낸들 어찌 알랴마는 그래도 오빠체면에 모른달 순 없어 "미꾸리가 용 흉내 내다 힘이 부쳐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떨어지는 거겠지"라며 얼렁뚱땅 우답으로 모면했었다. 미꾸라지가 서식하던 저수지가 족히 한 마장은 떨어져있었으니 달리 설명할 길도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꽤나 그럴 듯한 명답이 아니었나싶다.

몇 해 지나지 않아 한국동란 피란길에서 누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다. 미꾸라지처럼 힘이 부쳐 초가 이엉 타고 사뿐히 내려앉지도 못하고 영영 승천한 지 어언 60년 이 흘러 또다시 흑룡의 해를 맞았다. 휴전과 동시에 남과 북은 다시금 이념의 철책으로 막히고 이역보다 멀어진 고향땅에 비가 내리면 지금도 미꾸라지가 지붕타고 내려오는가 확인할 길 없다. 그렇지만 미꾸리 누이도 이제쯤이면 천상에서 용으로 환생하여 오빠를 굽어보며 눈물적시고 있지 않을까싶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대의와 명분을 빌미로 분쟁과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거개가 조작이요 궁색한 핑계요 아전인수다. 전쟁의 역사야말로 인류역사의 참모습이 아닌가.

그러나 초월적 존재들의 세계에서 전쟁이란 없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도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상쟁도 없다. 천사와 악마가 선악을 놓고 일전을 겨룬 적도 하나님과 악마가 정의와 불의를 가린다고 천상천하에서 혈전을 벌였다는 설화도 없다. 인간사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도 정의와 불의의 분별도 오직 시기와 이기(利己)로 분식하고 위장한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미꾸라지는 용이 부럽다 선망하지 않고 용 또한 미꾸라지가 하잘 것 없다 깔보는 법이 없다. 그들은 갈등을 유발하고 부추기는 적의나 시샘도 없고 단지 자연의 순리(順理)를 쫓을 뿐이다.

회색 구름이 용틀임으로 피어오른다. 눅눅하고 짭짜래한 태평양 바닷바람을 타고 한결 어른스러워진 누이의 목소리가 이명(耳鳴)으로 들려오는가싶다. '오빠 오빠도 힘이 부치기 전에 얼른 빗줄기 타고 올라와!' '그래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마음속으로 대꾸해본다. 눈물인가 빗물인가 계절병에 시름겨워하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집적거리며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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